- 신앙과 예술, 고귀한 삶, 미완의 광복

카자흐스탄 알마티 신학교사역을 다녀왔습니다.

러시아와 구 소련지역을 포괄하는 유라시아 감리교회(UMC in Eurasia) 신학대학은 지역이 방대하다보니 모스크바(Moscow Seminary)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원동러시아(블라디보스톡, 하바롭스키) 지역센터(3 Centers for Church Leadership)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 중앙아시아 지역 계절 학기에서 기독교미술사를 강의했습니다.

처음 강의 제안을 받을 때만해도 이슬람과 정교회 문화권에서 사역하는 현지 교역자들과 개신교적 관점에서 미술사를 논의하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여겨져 gms쾌히 수락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년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고려인 집회에 다녀오면서 막상 고려인(까레이스키)들의 애환과 기도가 배여 있는 중앙아시아를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어서 이번 사역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를 이륙해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경유 10시간 가까이 비행 후 도착한 알마티(Almaty) 시내의 모습을 대하며 유럽 문화와 역사를 배경으로 한 미술사 강의가 현지 사역자들에게 실제적 도움이 될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눈에 들어온 대부분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80년대 초반 서울 변두리의 분위기인데 일부 지역은 강남의 번화가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 극심한 불균형과 빈부차이를 지닌 도시라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8월 11일(화)-14일(금), 네 차례의 강의에서 만난 학생들의 반응을 대하며 이런 염려가 기우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카자흐스탄인, 키르기스스탄인, 러시아인, 고려인 등으로 이루어진 학생들은 이제껏 어떤 강연에서 접한 청중들보다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이콘(Icon) 문화권에서의 미술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를 꼭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한 청중들의 자세는 비단 선교지 특유의 분위기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술의 내용 그 자체가 필자와 청중 간의 언어와 문화, 출신지역의 경계를 넘어 일치와 강한 연대감을 제공해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영감과 창의력, 신앙고백은 시간과 장소를 넘어 같은 감동을 전해주었고 그 감동은 이제껏 강의해온 국내에서나 서유럽에서나 중앙아시아에서나 마찬가지로 나타났습니다.

히프크라테스의 선서에 나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 카자흐스탄 알마티 신학교사역, 기독교미술사 강의

강의 도중 종종 사역현장에서 제기된 신학적인 질문들이 있었는데 그간의 목회를 통해 받은 은혜와 경험을 기반으로 말씀으로 답변했습니다.

유럽 현지교회와의 협력 사역에서와는 또 다른 영적인(spiritual) 하나 됨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구소련 당시 교사, 엔지니어, 특수부대원 출신 등의 다양한 전력과 연령대 그리고 중앙아시아, 러시아, 고려인 등 상이한 문화를 배경으로 한 이들이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받고 같은 제목으로 기도할 수 있음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카타콤의 프레스코화에 나타난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영성이 전하는 이와 듣는 이를 하나로 연결시켜주고 근원적인 진리에로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복음의 능력과 영적인 진리가 성도를 하나로 연결해 줌은 당연한 얘기인데도 새삼스럽게 이 경험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맘이 들 정도로 성령은 그렇게 역사했습니다.

알마티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일은 수도사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시는 박선교사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박선교사님은 러시아가 열리자마자 1세대 선교사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에서 사역하다 돌아가신 남편의 유지를 따라 더 깊숙한 내지라 할 수 있는 카자흐스탄에 들어와 사역을 하는 분이십니다.

장성한 자녀들이 미국에서 전문직을 지니고 살아감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알마티로 또다시 더욱 깊숙한 내륙도시 우스또베로 이주해 여생을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고 계셨습니다.

주님께 가기 전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나누어주고 이제 세상에 올 때와도 같이 빈 몸이 되어 홀가분하다고 하시는데 진정 ‘고귀한 삶’이 주는 감동이 돌아와서도 가시지를 않습니다.

종강 날 저녁에 학생들 중에 지금도 이 지역에서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사는 우스또베에서 온 고려인 이전도사님을 안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 민족을 위해 귀한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에 그의 작은 체구에서 묻어나오는 150여년 고려인의 통한의 세월이 느껴져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구한말 연명을 위해 옛 조상들이 살던 연해주 땅으로 건너가 삶의 둥지를 튼 고려인들을 스탈린당국은 엉뚱하게도 일본의 간첩망설을 씌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시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모질게 살아남아 오늘날 유라시아 선교의 일선에 서게 하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깊은 경륜을 생각할 때 가까스로 눈물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현재 유라시아 감리교회(UMC in Eurasia)를 이끄는 에드워드 허 감독도 그리고 이번 집중강좌 프로그램의 책임자 안드레이 김 감리사도 고려인 출신입니다.

이제 유라시아 지역의 사회 각 부문에서 리더쉽을 가지고 살아가는 고려인들의 모습을 대하며 가축을 운반하는 화물열차에 실려 원동에서 중앙아시아로 옮겨져 흙바닥에서 맨손으로 삶을 일구어낸 우리 동포의 생명력에 숙연함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해서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같은 지역에 억류되었던 독일인 82만 명, 유대인 55만 명이 자신들의 조국(祖國)으로 돌아갈 때 고려인들의 귀환의사를 외면한 우리의 몰역사성이 사면되는 것은 아닙니다.

필자의 집 앞에 사는 이웃은 통독이후 헬무트 콜 정부의 배려로 카자흐스탄에서 독일에 귀향해 살고 있는 러시아계 독일인(Russlanddeutsche) 가정입니다.

알마티를 다녀온다고 잠깐 언급했을 뿐인데도 기억하였다가 출발하는 날 문 앞에 나와 배웅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떠나온 타국에서 오히려 고향을 느끼는 디아스포라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전도사님을 안고서 기도할 때의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과 한(恨)의 느낌은 그 애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뼈저린 것이었습니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는 2015년 8월 15일 광복절, 또다시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내내 ‘미완의 광복’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으며 사역지 독일에 귀임했습니다.

▲ 유라시아-감리교회-신학대학
▲ 유라시아 종족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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