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에서 온 기독교유적지 방문단과 함께 슈파이어(Speyer)를 다녀왔다.

로마제국시대에 도시의 기원을 갖는 슈파이어는 라인 강변의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들 중에서도 고도(古都)에 속한다.

도시의 상징 슈파이어 대성당(Dom zu Speyer)은 보름스 대성당, 마인츠 대성당과 함께 잘리어왕조 시대에 라인 강변에 세워진 3대 황제대성당(3 Kaiserdome) 중의 하나이다.

미술사에서는 전(前) 로마네스크양식(Pre-Romanesque)으로 분류되는 오토왕조 시대의 뒤를 이어 본격적인 독일 로마네스크양식이 출현한 시기를 잘리어 왕조, 슈타우퍼 왕조 시대로 여기는데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으로서 슈파이어 대성당이  지니는 교회건축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손색이 없다.

1529년 4월 19일, 슈파이어 대성당에서 열린 제국의회(Reichstag)에서 종교개혁기 최대 격변 중의 하나인 개신교와 카톨릭의 결별, 실질적인 개신교회가 탄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개신교진영의 6명의 제후(Fürsten)와 14개 제국도시(Reichsstädten)의 대표자들이 1521년 보름스 칙령(Wormser Edikt)에 명시된 루터에 대한 모든 법적 권리의 박탈과 그 집행을 재촉하는 제국의회의 결의에 대해 정식으로 저항(Protestatio)을 하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지금까지도 주로 영미권에서 개신교회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루터 자신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신성로마제국의 전일적 지배에 저항한다는 의미의 프로테스탄트라는 말보다는 복음의 정신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개신교회를 복음적인 교회 즉 Evangelisch(복음적인) 라고 부르기를 원하였고 지금도 독일어권에서는 이 말을 개신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다.

19세기 말 오랫동안 카톨릭 지역이었던 슈파이어에 개신교회가 시작된 분수령인 ‘1529년 프로테스탄트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를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 일은 교황 비오 9세가 소집한 제 1차 바티칸공의회(Vaticanum I, 1869-1870)에 대한 반발과 이 시기에 독일 전역에서 개신교와 카톨릭 간에 전개된 문화투쟁(Kulturkampf)을 배경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영국 빅토리아시대에 견주어 독일제국의 빌헬름시대(Wilhelmische Epoche)를 이끌던 빌헬름 2세 황제의 지원에 힘입어 역사적인 ‘슈파이어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Die Gedächtniskirche der Protestant zu Speyer, 1893-1904)가 네오고딕양식으로 세워진다.

당대의 화가 프리드리히 울름이 멀찍이 떨어져있는 슈파이어 대성당을 배경으로 프로테스탄트 사건을 여성으로 의인화해서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한 회화 저항(Protestatio, ca. 1890)에서처럼 시내 중심부가 아닌 성문 밖 외곽에 이 교회가 세워졌음은 물론이다. (사진1)

개신교도들의 역사적인 프로테스탄트가 4월 19일에 있었고 그 기념교회가 성문 밖에 지어졌다는 것은 이 일을 예사롭게 여길 독일인들과 달리 한국인 목사인 필자에게는 각별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일이다.

“여기 제가 서있나이다, 저는 달리 할 수 없나이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우소서, 아멘!” (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 Gott helfe mir, Amen!)

프로텐스탄트 기념교회(The Protestant Memorial Church in Speyer) 입구에는 1521년 4월,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고백한 자신의 기도문이 새겨진 바닥에 발을 딛고 눈길은 하늘로 향하며 왼손에 든 성경에 의지해 굳건히 서 있는 마르틴 루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2)

동상을 지나 교회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스태인드글래스가 영롱한  빛을 발한다.

정면 제단부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 오른편에 사도 바울과 종교개혁자 루터와 멜랑흐톤 그리고 그 왼편에 사도 요한과 종교개혁자 칼뱅과 츠빙글리의 모습이 그려진 모습이 종교개혁신학에 대한 균형감 있는 이해를 갖게 한다.

좌우 벽면의 수많은 스태인드글래스 중 믿음, 소망, 사랑의 덕목을 표현한 작품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그리스도께서 이보다 더한 믿음을 볼 수 없다고 하신 백부장의 모습이 믿음의 덕목을 대표하고 예수님을 다른 방법으로 맞이한 마리아와 마르다의 모습에서 사랑의  덕목이 상이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이 표현된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소망의 덕목은? 스데반집사가 돌을 맞으며 순교하는 중 눈을 들어 영원의 세계,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 순간 발걸음을 멈춘 채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아, 나는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왔는가!

주님, 이제껏 잠시 왔다 가는 세상에서 무얼 좀 움켜잡겠다고 욕망하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걸 소망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나이다. 이 어리석음을 용서하옵소서! Kyrie Eleison!

▲ 프리드리히 울름, Protestatio(저항), 1890년 경,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
▲ 마르틴 루터상,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
▲ 스태인드그래스, 95개조 반박문 게시, 산상수훈,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

▲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
▲ 스태인드글래스 믿음,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
▲ 스태인드글래스 믿음,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
▲ 스태인드글래스 소망,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
▲ 스태인드글래스 사랑, 프로테스탄트 기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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