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적인 광성교회 갈등과 분쟁, 왜 해결되지 않나?

2004년 시작된 광성교회 분쟁이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수도 없이 변한다지만 대립하는 이 교회 교인들에게 켜켜이 쌓인 감정의 골은 한 치도 좁혀지지 않았다. 광성교회는 이제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분쟁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 이성곤 목사측이 김창인 원로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영신학원 소유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

분쟁 12년째 …승자는 없이 상처와 감정만

2004년 4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만 11년의 세월동안,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대립 양측의 교인들은 극단적인 싸움을 자제하며 하나의 지붕 밑에서 각기 예배를 드리고 있다. 분쟁의 당사자인 김창인 목사는 은퇴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측의 실질적인 대표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그의 후임으로 청빙 받았던 이성곤 목사는 설교권을 박탈당했지만 여전히 다수 교인들의 리더로서 자리하고 있다.

분가해도 수 십 번 분가할 만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복닥거린다. 수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났고, 또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유입됐지만 이 교회는 아직도 분쟁의 현재진행형이다.

김창인 목사, 은퇴 12년째지만 여전히 실권행사하며 ‘건재’

광성교회 분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왜 양측은 분쟁 12년째에 접어들었지만 그 세월동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까? 극한 충돌과 법정싸움 등 갈등의 끝 간 데 없이 가본 이들이 왜 아직까지 타협을 하지 못하는지 밖에서는 궁금해 한다.

전쟁과 달리 교회의 분쟁에서는 어느 한 측이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김창인 목사측이 다수의 법적 소송에서 이겼다 할지라도 대다수 반대측 교인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 상처뿐인 승리이고, ‘패배의 승리’다. 결국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겨루는 ‘고통인내 내기’를 하고 있는듯하다.

광성교회 원로목사측의 홈페이지(http://www.kwangsung.or.kr/). 법적 지위는 차치할지라도 노회가 남광현 목사를 파송했지만, 그의 흔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 김창인 원로목사의 소개나 설교 동영상 등으로 장식돼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교회의 담임목사는 김창인 목사로 착각할 만하다.

메인 이미지중 하나는 광성교회 건물과 동시에 김창인 목사가 등장하고, 광성교회 소개에는 ‘김창인 원로목사’ 카테고리가 마련돼 있다. 이 속에는 장황한 그의 인사와 이력, 그리고 설교와 사진 컨텐츠 및 영상설교 자료가 구비됐다. 이 홈페이지 왼편에 꾸며진 ‘김창인 원로목사님 설교영상자료’를 클릭하면 ‘김창인 원로목사’로 곧바로 연결된다.

홈페이지가 말해주듯 광성교회 대립 한 측의 ‘최대 주주’는 김창인 원로목사다. 김창인 목사가 여전히 실권을 행사한다고 지적하는 이성곤 목사측 교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힘들다.

이에 대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목회자와 교인들을 독자 기반으로 하는 <예장뉴스>는 기사에서 “홈페이지에 남광현 목사는 흔적도 없고 김창인 원로 목사의 설교동영상과 우상화가 버젓이 보인다”며 “원로목사는 아직도 광성교회의 최대 주주로서 모든 송사와 후임자 작전을 아직도 막후에서 지휘한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예장뉴스>는 더 나아가 “이런 자세로는 누가 후임이 되도 문제다”면서 “사심과 결별해야 한다. 존경받는 원로로 남기 위하여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치열한 싸움과 갈등에서 얻은 것이 있는가?

그러면 2003년 12월 21일 위임목사로 취임했던 이성곤 목사는, 분쟁이 촉발된 그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광성교회 목사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결격사유가 있을까? 물론 교회분쟁의 한 당사자로서의 도의적인 책임 문제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에게서 신앙이나 신학의 이단성, 용서할 수 없는 도덕적 흠결이나 학위변조 등의 거짓행위 등 결정적 사유를 찾기 힘들다.

김창인 은퇴목사측은 그동안 이성곤 목사의 결격사유를 숱하게 흘렸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모두를 설득할 만한 결정적인 흠결은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입양한 아이의 문제까지 당회 및 노회에서까지 거론하여 노회재판국의 유전자검사를 하라는 명령까지 받아냈지만, 노회재판국 스스로 문제 있는 명령이라 판단하고 그 명령을 취소했다. 이로 인해 그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여 도리어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주었다는 비판만 받았을 뿐이다.

이성곤 목사는 10여 년 동안 무수한 공격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는 법적인 분쟁의 결과 현재 광성교회 내에서 주일설교도 할 수 없다. 목회자로서 예배당에서 할 수 있는 일반적인 목양의 권한도 박탈당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들을 따르는 교인들을 버리지 않았고 교권의 그 숱한 공격과 끝을 알 수 없는 수모에도 목양의 자리를 지켰다. 비록 교회 밖의 목양일지라도 그의 마음은 광성교회를 떠나지 않고 지금도 인내하고 있는 중이다.

은퇴목사는 여전히 교회에서 막후 실력을 행사하며 교회나 유관기관 재산권을 꼭 쥐고 있지만 후임목사는 교인들에 대한 설교권도 행사하지 못한 채 교회 주변을 맴돌고 있다. 목회자에게 설교권은 생명과도 같다고 하지만 그는 몇 년 째 목양의 생명인 설교에서 소외돼 있다. 그로 인해 우울증과 울화병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이를 극복했다는 전언이다.

10여 년 동안 접점을 보이지 않는 전임과 후임, 그리고 대립 양측의 교인들. 과연 양측이 얻은 것이 있을까? 쳇바퀴 돌 듯 하는 대립과 법적소송은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위안도 성과도 안겨주지 못한다. 욕망의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누군가의 욕심과 아집 때문에 수천 명의 교인들은 지금도 고통 속에서 얼굴을 펴지 못한다.

광성교회 사태의 역사는 무엇을 위한 싸움이고 왜 싸우는지 의문점을 갖게 한다.

2003년 12월 21일 김창인 목사가 은퇴하면서 원로목사로 추대됐고 같은 날 이성곤 목사가 위임목사로 취임했다. 그러나 2004년 4월경부터 은퇴목사 측과 담임목사 측의 갈등으로 수개월 동안 예배 및 집회 방해, 비방, 충돌 등 분쟁이 촉발됐다.

표면적으로는 이성곤 목사의 결격사유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김창인 목사가 후임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내치려는 것이 주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이 정설. 여기에 교권인 예장통합 서울동남노회와 총회재판국이 개입하면서 점점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광성교회를 둘러싼 예장통합총회와 서울동남교회의 치리행정은 ‘좌고우면’에 세간의 웃음을 살 정도의 ‘무소불위’로 대별된다.

2005년 1월 11일 해당노회는 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광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를 파송했으나 김창인 원로목사 측 교인들이 이성곤 목사를 ‘목사로서 부도덕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노회 재판국은 세상에서조차 변호사 조력권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대동한 변호사 출입을 막고 재판을 진행하여 그해 3월 5일 이성곤 목사에 대해 당회장 직무정지를 처분한다.

뿐만 아니라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것은 수습전권위원장으로 노회가 파송한 유희정목사의 사리사욕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광성교회 분쟁을 수습할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본인이 기소위원이 되어 이성곤목사를 기소하고 당회장 직무정지를 내린 후 직접 광성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저질렀다.

유희정 목사는 임시목사로 광성교회 담임목사에 부임한 후 3년 임기를 마치며 10억에 가까운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서울동남교회는 심재선 목사를 임시당회장으로 파송했다. 그러나 김창인 은퇴목사측은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하여 그를 그만두게 하고 자격이 없는 남광현 목사를 파송했다. 좌고우면, 무소불위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다.

이제까지 이 노회 뿐만 아니라 통합측 총회도 전도목사가 임시당회장으로 파송한 전례가 없었다. 이성곤 목사측은 “법을 악용하여 이러한 행위를 한 것은 증경총회장이었던 김창인 은퇴목사의 입김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악행들에 교단헌법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가장 코믹한 것은 서울동남노회가 자신들이 주관한 2003년 원로목사 추대 및 위임목사 취임 자체를 무효라고 주장한 것. 예장통합 교단 증경 총회장들을 초청하여 순서를 맡아 진행한 예배를 스스로 무효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모습에 6000여 교인들만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교권의 과도하고 부당한 개입으로 광성교회의 분쟁은 점점 나락으로 곤두박질 당했다. 결국 총회나 노회가 일방적으로 이 목사를 내몰고 있다는 판단을 한 이성곤 목사 측 교인들은 교인총회를 열어 통합교단 탈퇴를 결의한다. ‘자구책’의 일환이라는 것.

이후 밀고 밀리는 공방을 벌인 양측은 이성곤 목사측 교인들도 예장통합 소속의 광성교회 교인이라는 법원 판단에 따라 현재 한 지붕 아래에서 각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욕심’과 ‘아집’을 버리지 않으면 해결 난망

은퇴목사측 교인이나 이 교회를 관할하는 교권은 법적인 다툼에서 대부분 승소했다고 자부하지만, 이들이 얻은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대다수 교인들이 원로목사측이 아닌 반대측인 이성곤 목사 교인들로 집결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성곤 목사측은 양측 교세를 6000명대 500명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권으로 대별되는 예장통합측과 은퇴목사측은 왜 이 교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소모적인 법적인 소송에만 매달릴까? 교회재산을 합리적으로 나누면 가장 손쉽고 빠른 해결방안이다. 이것보다 10여년의 그 지겨운 싸움이 더 즐거울 리 없고 가치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교권측은 이를 실현하지 않았다. 물론 시도가 있었겠지만 결과를 볼 때 이를 외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교회와 유관기구에 속한 재산을 ‘모두’ 차지해야 한다는 욕심에 기인한다. 그러나 원로목사측이 교세에서 소수이기에 이것은 ‘과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 한 광성교회 사태는 여전히 평행선이다.

이는 최근 불거진 영신학원에 대한 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광성교회 은퇴목사 반대측 교인들이 교회소유인 학교법인 영신학원을 김창인 목사가 사유화했다며 이를 원 소유자인 광성교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한편 수차례에 걸쳐 이 학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지난 3월말부터 4월 3일까지 10일 간 옥외집회를 실시한 것.

이들은 성명서에서 광성교회가 학원선교를 목적으로 교회재산을 출연하여 1987년 이 학원을 인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 김창인 이사장과 그의 사위인 교장이 인수초기부터 광성교회와는 무관하게 개인이 인수한 것처럼 꾸몄”으며 “그동안 광성교회에서 지원한 재단전입금도 개인통장으로 받아 용처도 불분명하게 사용하여 왔”고 “그들을 따르는 교인들 중 일부를 학교의 교사와 직원으로 채용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지난 20여년을 본인들의 사립학교 왕국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김창인 이사장과 그의 사위인 교장이 학교법인 영신학원을 사유화시킨 증거는 명확하다”며, “국가기록원에 보존된 영신학원 관련 자료 확인결과 초기 인수자금을 교회에서 지원하면서 마치 김창인 목사 개인이 일부를 출연한 것으로 작성하였다”고 폭로한 바 있다.

특히 은퇴목사 반대측은 “김창인 원로목사가 2004년 12월 21일 광성교회를 퇴임한 이후에도 계속 영신학원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최측근들을 이사진에 두고서 영신학원을 쥐락펴락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간 영신학원을 교회의 품으로 되찾고자하는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모조리 폐기했다는 인수초기 증빙자료를 모두 찾아내 영신학원을 사유화 시킨 비밀을 알아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우리 6천여 광성교회 성도들은 앞으로도 더욱 가열찬 투쟁을 계속하여 학교법인 영신학원을 기필코 되찾을 것”이라며 “이제 영신학원은 김창인 이사장(원로목사)의 개인소유 학원이 아니다. 이제라도 김창인 이사장은 영신학원을 광성교회 품안으로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은퇴목사인 김창인 이사장과 그의 사위인 교장, 그리고 그의 추종세력인 이사진은 당장 영신학원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지다.

광성교회 재산분쟁은 비단 영신학원의 문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듯하다. 풍납동 본당은 물론 기도원과 그 외 교회소유 부동산에 대한 소유문제는 광성교회 분쟁을 해결하는데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본지 제휴 <기독교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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