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육학회, 춘계학술대회 열어 청소년 기독교교육 방향 모색

가정, 학교, 사회, 군대 심지어 교회에까지 다양한 폭력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한국사회 속에서 청소년 기독교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회복적 정의’ 구현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기독교교육 학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 4일 이대 대학교회에서의 춘계학술대회 모습

‘깨어진 관계와 피해 회복’에 초점

한국기독교교육학회(회장 이규민 박사)는 4일 서울 이화여대 대학교회에서 ‘2015년 춘게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주관으로 진행된 학술대회의 주제는 ‘폭력사회와 청소년 기독교교육의 방향 모색’이었다.

이날 학술대회에 발표된 논문들은 ‘기독교교육이 더 이상 사적인 만족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넘어 ‘공적인 책임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사명감의 표출로 받아들여질 만큼 기독교교육의 공적 역할들을 강조해 관심을 모았다.

이는 종교를 더 이상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하지 않는, 그래서 ‘폭력’과 같은 공적 담론에 있어서 종교를 외부의 영역에 두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폭력과 관련, 사회의 사법 시스템이 전통적 ‘응보적 정의’의 관점에서 ‘회복적 정의’의 관점으로 전환되고 있듯이 청소년 기독교교육 역시 청소년 폭력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회복적 정의’의 관점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응보적 정의’란 범죄와 처벌에 있어서 ‘어떤 법을 어겼기에 응당 이러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회복적 정의’는 ‘범죄는 관계를 깨뜨린 것이고 따라서 어떻게 그 깨어진 관계와 피해를 회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범죄와 관련 영향을 받는 모두가 문제 해결의 주체

이재영 원장(한국평화교육훈련원)은 ‘학교폭력에 대한 회복적 접근’이라는 제목의 주제 발제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자체가 매우 불행한 일”이라면서 “하지만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좀 더 건강하고 교육적이라면 제2의 피해나, 가족과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지금의 학교폭력 처리방식은 당사자에게 대결적 구도를 조장하고, 학교와 지역사회에 불안요소를 키워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최근 몇몇 나라에서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 접근으로 등장하고 있는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원장에 의하면 ‘회복적 정의’는 사법절차의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그 범죄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주변사람, 더 나아가 지역사회 등 어떠한 범죄와 관련해 영향을 받는 사람 모두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된다.

이 원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회복적 정의의 패러다임은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의의 실천은 잘못된 사람을 징벌하고 내어 쫓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화해와 샬롬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샬롬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

이를 위해 이 원장은 “학교와 교육당국, 지역사회, 시민단체, 사법기간 등 다양한 사회단위에서 좀 더 체계적인 준비와 유기적 연대를 이뤄가야 한다”면서 “그 중에서도 좀 더 넓은 영역에서 평화와 화해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교회와 일선 학교에서 헌신하고 있는 기독교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평화와 화해의 사역은 더 이상 진부한 설교나 강의로만 남아 있을 수 없다”면서 “교회와 기독교사로서의 역할에 ‘화평케하는 자’의 정체성이 각인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폭력과 분노에 대한 종교교육적 성찰: 회복적 정의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분과 발표를 한 이은경 박사(감신대)도 “피해자에 초점을 맞추는 회복적 정의는 성서에서 말하는 약자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실현이며 진정한 샬롬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라면서 “회복적 정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회복적 정의는 학교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종교교육의 영역에서도 약자를 향한 정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적 정의가 아닌 샬롬의 정의 곧 예수의 비폭력적인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기반과 아이디어를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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