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들어 계속 날씨가 좋지 않다. 섬에서 날씨의 좋고 안 좋음의 가름은 바람과 파도가 기준이다. 눈이나 비, 추위나 더위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수차례 언급한 것 같이 바람이 초속 13m, 파도가 3m 이상이 되면 풍랑주의보가 내려진다. 날씨가 안 좋은 것이다.

풍랑 주의보가 내려지면 먼 바다의 여객선 항행이 통제된다. 평균 1년에 60일 정도 풍랑주의보(경보 포함)가 내려진다. 주의보와 관계없이 갑작스런 돌풍이나 짙은 안개 때문에 배가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주의보 발효나 해제 시간이 어중간할 때도 배가 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침 6시 출항 예정인데 주의보가 7시에 해제되는 경우, 또는 배가 항해를 완료하고 모항으로 입항하는 예정시간이 오후 4시인데 오후 3시부터 주의보가 발효되는 경우, 1시간 차이로 아예 처음부터 배가 출항을 하지 않는다.

그런저런 경우를 다 감안하면 실제로 배가 오지 않는 경우는 1년에 8,90일쯤 된다. 지난 12월 첫 주 7일 동안 우리 섬에 두 차례 배가 왔다. 그 기간 뭍에서는 강추위와 폭설, 빙판 길 때문에 무척 힘들고 고통스러운 주간이었다.

화요일(12/4), 풍랑이 제법 거친 날이었는데 예상 외로 배가 들어왔다. 선착장에 우편물만 던져 주고 배는 떠났다. 알고 보니 ‘대통령 선거공보’가 배부되는 날이었다. 선사(船社)로 행정 당국의 압력이 있었나 보다.

또 한 차례 금요일(12/7) 오후 배가 왔지만 우리 마을에서 탈 사람도 내릴 사람도 없어 배는 선착장 앞 바다를 그냥 지나갔다. 배가 오지 않으면, 오더라도 선착장에 대지 않는다면, 우리 마을에선 내가 제일 아쉽다. 뭍에 들고 나가는 것도 그렇지만 우편물을 제때에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 우편물로 배달되는 일간 신문과, 정기 간행물로 받아보는 주간지, 월간지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거나 가끔 분실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동소우이도를 포함해 우이도 본도와 서소우이도에서는 나 외에 중앙지 일간 신문을 구독하는 주민이 없다) 제때에 읽지 못하는 일간지나 주간지를 펼칠 때면 다 식어버린 팥죽을 드는 것 같이 김이 새버린다.

작은 섬이지만 우리 섬엔 마을이 둘 있다. 선착장이 있는 ‘큰배미’ 마을과 선착장에서 갯가를 따라 400미터쯤 돌아가면 교회가 있는 ‘무등골’ 마을이다. 큰배미에는 학교가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건물이다. 윤 할머니 모자와 문 할머니 그리고 우리 부부가 큰배미에 살고, 무등골에는 전도사와 선장과 허 할머니가 살고 있다.

전체 8명이 상주하는 우리 섬(동소우이도)에 아내와 전도사가 지난주일 오후 출타했다. (이곳에선 배를 타고 뭍에 나가는 것을 ‘출타’라고 한다) 8명 주민 중 2명이 빠져 나갔으니 섬이 휑하니 빈 느낌이 든다. 나 역시 24시간 곁에 붙어 있던 아내가 없으니 빈집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기간 동안 날씨도 춥고 바람도 세고 바다도 흉흉해 대부분 시간을 방안에서 보냈다. 잠간씩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자면 강아지를 데리고 언덕에 올라가 사방 거칠고 음울한 겨울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나들이였다. 윤, 문 할머니와는 새벽기도 때 얼굴을 뵙는 것 말고는 강아지와, 하루 두 차례 모이를 가지고 찾아가 보는 닭들만이 유일한 말 상대였다. 마을에 사람들이 없으니 일도 없었다. 일이라는 게 대부분 사람들과의 관계고 사람들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섬마을까지 전기가 들어오고 TV를 볼 수 있으니 이런 날은 번거롭게 이웃집에 마실 갈 필요도 없이 대부분 하루 24시간 TV 앞에 죽치고 앉아서 시간을 죽인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가 사라지고, 마을의 전설이 죽어버린 지 오래다. TV는 사람들의 오랜 이야기뿐 아니라 상상력과 꿈과 모험까지 바보상자 안에 가둬버렸다. 어찌 TV 뿐이겠는가? PC와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아이패드, DMB까지, 청소년들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꿈을 잃어버린 미래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 않은가?

혼자 있는 동안 TV를 켜지 않기로 했다. 스마트폰도 껐다. 그러자 시계는 하루를 여전히 24시간으로 가리키지만 기도와 명상과 독서로 보내는 시간만큼은 얼마든지 늘여 사용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책을 읽기 좋은 환경이 있을까? 특별한 축복에 감사한다.

최근에 기독교서회에서 발간된 오재식 님의 회고록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을 읽었다. 나는 오재식 님을 월드비전에서 6년 간 회장으로 모셨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기독교(특히 NCCK)계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바로 그 현장의 개미떼들을 조직하고 지휘하고 지원했던 분이다. 그분을 모시고 함께 일할 때 그분의 철학과 경륜을 알았더라면 나의 50대가 더욱 치열하고 의미로 풍성하지 않았을까 아쉽다. 어떤 분들이 그분의 이름 때문에 형님 되시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언감생심,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다. 3년째 암 투병 중이시라는데 안타깝다.

우리나라에서 ‘개미’를 통해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도 읽었다. 작가의 놀랄만한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은 방대한 지식이다. 작가의 지식의 창고를 방문했다. 유익한 경험이었다. 새삼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을 대할 때 가장 큰 두려움을 느낀다. 미지의 것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도전에 경의를 표한다. 나를 자극시킨 책이었다.

이번 겨울, 방안에 틀어 박혀 있을 수밖에 없는 춥고 황량한 날 읽으려고 작은 아들의 서가에서 가져 온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다시 한 번 읽을 참이다. 이번에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기로 했다. 작가의 삶과 작품을 문학적, 사회적, 역사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논평한 김윤식의 <박경리와 토지>를 먼저 읽었다. 그리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지도와 인물들의 가계도를 복사해 놨다. 토지 속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을 만나러 떠날 이번 겨울 여행이 벌써부터 설렌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낙도는 나에게 ‘잃어버린 수평선’, 샹그리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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