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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칼럼] 사람이 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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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5  0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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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기(Adventszeit)가 시작되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Deus incarnatus, 성육하신  하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지난주에 다녀온 알자스지역 콜마르 운터린덴박물관(Musée Unterlinden Colmar)에 전시된 16세기 초 독일 르네상스기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Retable  d'Isenheim)에 묘사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수일이 지났는데도 뇌리에서 지워지지를 않는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운터린덴박물관(Musée Unterlinden Colmar)이 2015년 5월, 재개장을 앞두고 확장공사 중이라 현재 도미니칸교회(Égilise des Dominicains)에 전시되고 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hias Grünewald, 1475/80-1528)는 1512년-1515년에 당시 신성로마제국(독일) 알자스지역의 이젠하임 성 안토니우스 수도원에서 맥각(麥角), 단독(丹毒) 등 중증 피부질환이나 급성전염병 치료를 받던 환자들을 위한 예배당 제단화(Isenheimer Altar)로 이 작품을 제작한다.

작품이 제작된 이 시기는 140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동한 초기 르네상스운동이  1500년대 초에 로마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성숙한 르네상스로 전개되던 이른바 전성기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의 하나로 여겨지는 시대이다.

브라만테의 균형과 조화를 갖춘 고전건축의 완벽한 재현, 이상적인 미를 회화와 조각에서 구현한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의 원숙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이 시대를 대표한다.

이상적인 미를 추구함으로 고대의 재건을 이룩하고자 한 교황 율리우스 2세, 레오 10세 등 교황청이 주도한 화려함과 웅장함의 미술흐름에 반하여 금욕적이고 경건한 신앙의 전통이 남아 있던 북유럽에서 이에 저항하는 미술활동이 나타난다.

종말론적 분위기의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최후의 심판', 알브레흐트 뒤러의 '요한계시록'  등이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는 그 중에서도 저항의지를 넘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이 진리라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어둡고 황량한 풍경 가운데에 잔뜩 찌푸린 하늘을 배경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 가시에 찔리고 곪은 상처로 뒤덮인 채 고통스러워하는 몸이 휘어진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살은 병적인 초록색 기운마저 띠고 있고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 스며나오는 붉은색  피가 초록색 피부와 대조되고 있다. 이런 보색 사용은 놀라울 정도의 강렬한 인상과 역설적으로 활기감 마저 자아낸다.

작품 어디에도 당대 이탈리아에서 추구하던 고대적인 이상적인 아름다움(all'antica, 알란티카)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신체의 뒤틀림이라든지 발목부분의 묘사 그리고 화면구성을 보면 레오나르도풍의 기법을 화가가 이미 숙지하고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그럼에도 그뤼네발트는 북유럽의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을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 신플라톤주의 신학을 이념적 기반으로 한 남유럽의 르네상스 미술에 저항하고 있다. 고대 고전의 재생(Rinascita, 리나시타)을 통한 로마의 재건에 머물렀던 남유럽과 달리 교회의  재생을 의식한 에라스무스적 인문주의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라티어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말한다. 세례요한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 길을 오도하고 있는  당대의 교회가 아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이 흥하여야 한다.

그뤼네발트는 이 그림을 통해 세상과 교회가 깊은 위기에 처해있다고 자기 시대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고 있다. 

▲ 이젠하임 제단화(Retable d'Isenheim)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형상화는 곧 이어 동시대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으로 구현된다.1518년 4월, 하이델베르크 아우구스티너수도원에서 발표된 ‘하이델베르크 변론’ (Heidelberger Disputation)에서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안에서만 보여진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십자가의 비천함과 치욕 속에 계신 분으로 동시에 인식하지 않고 오직 그의 영광과 주권에서만 인식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항)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은 악을 선이라 부르고 선을 악이라 부르지만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은 (고난이 있다하더라도) 사실 그대로 말한다.

“미술은 언어로 표현되는 신학적 통찰에 선행하며 신학적 통찰을 형상화 한다.” (Theo Sundermeier)

청빈과 경건의 추구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의 삶을 따르려한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i) 신학의 영향으로 14세기 피렌체의 지오토(Giotto di Bondone)의 회화의 혁신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정신이 결국 종교개혁과 트렌트공회의 신학적 통찰을 형성하고 이러한 신학이 다음 시대의 미술의 흐름을 상이하게 이끌어 갔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젠하임 성 안토니우스 수도원에서 당시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전염병과 피부질환을  치료받던 중환자들은 제단화에 표현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  위로를 얻었으며 제단화 안쪽 패널의 상처 하나 없이 치유된 몸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대하며 소망을 얻었다고 한다.

이상화된 신성한 전능자의 모습이 아닌 사람이 되셔서 고난과 고통을 함께 받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진정한 위로와 소망을 얻은 것이다.

지난 봄 고난주간에 세월호의 아픔이 발생한 후 성탄절을 맞기까지 어려움과 슬픔이 가시지 않은 고국과 고국교회 위에 사람이 되신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J. Moltmann)의 위로와 소망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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