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인생] 육상선수ㆍ2014 인천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한국 육상의 간판, 여호수아의 기적, 육상 스타 등의 별명은 제7회 인천아시안게임을 통해 일약 스터덤에 오른 여호수아(28. 인천시청) 선수를 지칭하는 수식어다. 그럴 만도 하다. 여호수아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육상 단거리에서 우리나라에 28년 만에 메달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플러스인생 12월호>(신앙계)가 더 멀리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육상선수 여호수아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천아시안게임 육상 200m동메달과 1600m계주 은메달의 주인공인 여호수아. 그는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뿌리 깊은 기독교 가문에서 그것도 목회자(여재선 목사, 청목교회)의 자녀로 태어났다. 말 그대로 모태신앙인이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하나님이 계실까 안 계실까 하는 의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고 항상 저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며 살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시면서 부모님은 나름 어려운 점이 많으셨겠지만 운동하는 제게는 항상 최선을 다해주셨습니다. 이제 조카가 태어나서 5대째 기독교 가문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그는 초등학교 4학년 운동회 때 릴레이에서 반 바퀴나 뒤진 상대를 따라잡고 이기는 것은 물론 형들하고 달리기를 해도 이기는 것을 보고 그의 아버지가 인천에서 육상을 가장 잘 하는 학교에 전학시킨 것이 계기가 돼 선수의 길로 나섰다.

하지만 고등하교 2학년 때까지 개인 메달이 없었을 정도로 성적은 초라했다. 축구하고 농구하다 다치는 등 부상에 쭉 시달렸기 때문이다. 고 3이 되면서 축구공이든 농구공이든 전혀 만지지 않은 끝에 전국대회 동메달 3개로 대학에 진학했다.

잘 나가던 그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유력한 메달 유망주였는데 400m 계주를 앞두고 몸을 풀다가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부분의 근육과 힘줄)이 파열된 것이다.

“경기가 시작됐고 살짝 안 좋긴 했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계주 1번 주자로 뛰었다가 결국 절뚝거리면서 들어왔습니다. 그날 언론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고 제 개인 홈피에도 난리가 났습니다.”

“ 제가 몸 관리를 못한 것은 비난 받아 마땅했지만 이 일이 제 이름과 연관 지어져 사람들이 하나님 욕을 너무 많이 해서 그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그는 말 못할 고민이 많았다. 2월 말부터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전반기 시즌이 4월부터 7월까지인데 그 시즌에 아시안게임 선발이 이루어집니다. 아픈 것을 참아가며 국내외에서 열리는 7~8개의 경기를 다 치렀지요. 그런데 7월부터는 걷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워낙 병원 가기를 싫어하는 저였지만 결국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고 무릎에 전방 십자, 우방 십자를 비롯해 네 군데에 손상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제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더 매달렸습니다. ‘다리로 뛸 수 없으면 팔로라도 뛴다’는 마음가짐으로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면서 계속 무릎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금요기도회 때였는데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무릎이 아팠습니다(웃음).”

“매일 병원에 가고 소염진통제를 먹어가며 아시안게임을 준비했는데 점차 좋아지더니 신기하게도 시합 당일에만 안 아팠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많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무릎은 아픕니다(웃음).”

그렇게 200m에서 동메달을 따낸 그는, 다음날 메달이 기대되던 400m 계주에서는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반면 계획에도 없던 1600m 계주에 갑작스럽게 출전해서 은메달까지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400m 계주를 뛰고 들어왔는데 우리 팀이 아쉽게도 바통 실수가 있어서 실격을 당했습니다. 잠시 쉬고 있는데 감독님이 오셔서는 빨리 1600m 계주를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30분 후에 경기한다고 말이지요. 알고 봤더니 선수 한 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출전선수 명단에 대신 제 이름을 올려놓으셨어요.”

“마지막 주자로 나섰는데 골인 지점에 2위로 달리던 선수와 거의 동시에 들어왔습니다. 시간상으로 1000분의 1초까지 같아서 비디오 판독을 했는데 제가 들어오면서 머리를 내밀고서 넘어지면서 들어왔어요. 기록이라도 조금 더 단축시켜보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들어왔는데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은메달을 따게 됐지요.”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제친 선수가 이번대회 400m 우승자였더라고요. 저는 함께 뛰는 마지막 주자가 그런 선수인 줄도 몰랐어요. 알았다면 이런 결과를 얻기 못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까운 분들이 하나님께서 뒤에서 밀어주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그 표현처럼 제가 잘 달린 게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하셨어요. 제 기량으로는 나올 수 없는 기록이 나왔거든요.”

그의 다음 목표는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올림픽은 우리나라에서 1등을 한다고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기준 기록을 통과해야만 출전이 가능하다.

“저는 하나님께 그 기도를 할 때 금메달을 얻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닌 먼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먼저 인거 같아요. 믿음이 있다면 성적도 따라올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조금 먼 계획은 선진 육상 기술을 배워 후배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석사까지는 마쳤는데 박사과정도 하고 공부를 더 많이 해 우리나라 육상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기사 전문은 <플러스인생 12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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