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23)

두어 번 서울 사대문 안에 갈 일이 있었다(필자는 인천에 살고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 약속장소로 이동하면서 보게 된 광경이 의아했다. 전경들이 탄 버스가 거리 전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전경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에어컨인지 히터인지를 계속 작동을 시키기 위해서 버스들은 한결같이 시동을 걸고 있었다. 공회전하는 버스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는 숨을 막았다.
 
버스가 길가에 나란히 서 있으니 시야를 막았고, 배기가스는 숨을 막았다. 물론 그와 함께 소음까지 더하니 더운 여름에 걷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났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겨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가야?” 돌아오는 대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서울은 주말이면 매주 이래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도심에 전투경찰들이 배치되어서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1970, 80년대의 서울 도심이 생각났다. 정말 혼란스러웠다.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도 전경들을 실은 버스들이 아예 길을 가로막고 있을 때가 많았다. 지나는 사람들은 시도때도 없이 불심검문을 당했다. 들고 있는 가방은 모두 뒤져서 소위 금서(禁書)나 데모 용품이 들어있는지 검색을 했다. 허구한 날 최루탄이 여기저기서 날아다녔다. 참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어두웠던 시대가 지난 줄 알았는데 서울엔 아직도 소위 닭장버스가 길을 막고 있었다. 우리의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물론 데모를 하는 이슈는 달라졌다. 주장하는 내용도 다양하다.

지나는 사람들의 소지품을 검사하자고 하는 경찰도 없다. 하지만 닭장버스에 갇혀있는 전경들과 거리의 시야를 가리고 서 있는 버스들, 간부들의 손에 들려있는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소리들은 여전하다. 그냥 그 장면만 보더라도 서울은 답답했다.
 
약속된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뤘기 때문에 그것에 비례한 의식의 성숙과 정치력의 성숙이 따르지 못한 것이 아닐까. 또한 정치인이든 일반인이든 필요와 생각을 나누고 하나로 모으는데 있어서 아직도 많이 서툰 것이 문제가 아닐지 하는 생각도 했다.

표현하는 방법이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그러니 악순환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큰 소리를 치면 뭔가 되고 조용히 말하면 될 것도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의 서울은 세계에서 손꼽이는 큰 도시다. 단지 큰 것만이 아니다. 세계의 유행과 첨단 상품들이 제일 먼저 테스팅되는 곳이다. 그만큼 소비력과 제품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도시라는 의미이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 만큼 놀라운 경제 성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도시다.
 
그런데 오랜만에 찾았던 서울은 아직도 1970년대에 머물러있었다. 분명 오가는 사람들과 발전한 도심의 거리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의 모습이 그래야 할는지.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치력이 간절하다.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세계가 놀랄 만큼 성장했는데 닭장버스는 여전히 광화문 네거리와 종로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도 많이 흘렀건만 닭장버스에 갇힌 채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전경들도 젊은 날을 허비하고 있는 것도 여전했기 때문이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버스에 에어컨디셔너나 있다는 것 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닭장버스를 없앤다고 선언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한데 언젠가 슬그머니 다시 닭장버스는 광화문과 종로에 돌아와 있었다.
 
하기야 그리스도인들조차 자기 책임을 못한다면 어디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누구를 탓하는 것에 앞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선함이 있고, 평화가 있으며,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이해와 섬김이 있다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변하게 할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뭔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사회를 이끌면서 지표가 되어주었는데 ···.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하니 광화문의 닭장버스를 탓할 일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지표가 되지 못한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의 부덕 때문이 아닐까.

지나친 비약일 수 있으나 모든 것이 발전했건만 시민들의 의사 표현 방식이 달라지지 않았고, 지도자들 역시 합리적으로 풀어가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쳐야 뭔가 들어주는 현실이라면 광화문의 닭장버스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마저 든다.
 
광화문의 닭장버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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