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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칼럼] 수신제가(修身齊家)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22)
이종전 교수  |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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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25  10: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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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修身)과 제가(齊家)는 인간이 사회를 형성함에 있어서 기본적,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다. 때문에 선인들은 수신과 제가를 인간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기본으로 여겼다.

이것은 대신할 수 있거나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깨달음과 수고를 통해서 자신의 인격에 담아야 할 요소이고 덕목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재능을 개발함에 앞서 사람이 되는 기본으로 강조되는 요소다.

알고 지내는 한 초등학교 초임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먼저 듣는 자가 되어야 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연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요···.” 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딛고 교사로서 살겠다고 전공을 여러 차례 바꿔가면서 결국 대학을 다시 가는 수고와 많은 시간을 드린 다음에 초등학교 교사 발령을 받아 이제 두 학기 째인 그가 학기를 시작하면서 보낸 것이다.

그는 가르치는 일이 버거운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로서 자신의 모습에 버거워하고 있다. 틈만 있으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다. 문자를 받을 때 마다 나는 그에게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왜 선생 된 자에게 책임이 크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지를 상기시켰다.

가르치는 것, 그 자체는 기능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르침이 능력을 동반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존경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사실 교사 자격증을 얻는 것보다 이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깊은 병에 걸렸다면 선생도 많고, 정치적, 사회적 지도자도 많지만 문제는 자신의 기능적 능력만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선생은 단지 직분으로서 선생이 아니다. 정치 지도자도 비록 정치의 속성이 특별하다고 할지라도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능력은 정치적 목적을 쟁취하는 것으로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미 다시 오르지 못할 벼랑에서 떨어진 사람이다.

  모든 지도자는 자신의 직분이나 기능에 따른 수신(修身)이 되어야 한다. 어떤 능력이 있고 권세가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수신이 되지 않았다면 그에게 주어진 직분이나 위치는 백성들에게 실망스럽고 고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신하는 일이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받듯이 받거나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특별히 지도자는 백성의 눈높이에 따라서 수신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수신의 수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자연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지속적인 성숙이 이뤄져야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과 하나님의 뜻을 깨쳐야 한다. 깨달음과 함께 그 말씀 안에 자신을 있도록 해야 한다.

한데 요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지도자는 물론이고, 그리스도인이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깨달으려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려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기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수신을 위해 애통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복음조차도 재능으로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목회도 뭔가 남 다른 재주를 갖게 되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금년 전반기 내내 국무총리나 장관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청문회가 발목을 잡았다. 지명을 받은 사람들이 청문회에 임하기도 전에 스스로 고사하거나 사퇴하기를 반복했다. 급기야 대상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국정공백이라고 하는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야말로 궁여지책으로 현 장관을 유임시키는 일까지 있었다.

왜일까? 우리 사회가 성장 일변도로 달려오면서 결과적으로 기본을 소홀히 여긴 결과가 아닐까. 수신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 모두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데 말이다. 능력과 스팩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본을 말하는 것은 어리석게 보일만큼 무시되는 현실에서 수신을 요구하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지는 현실이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더욱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수신(修身)은 신앙의 기본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깨닫고 고백하는 신앙과 일치하는 자아(自我)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를 힘써 기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인격을 갖춘 그리스도인으로서 수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신이 없는 제가(齊家)는 없으며, 수신이 없는 복음의 능력은 기독교의 또 다른 이탈일 뿐이다. 기독교 신앙은 시작부터 인격 안에서의 만남이고, 인격을 통해서 드러나며, 인격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여전히 수신에는 관심이 없고 목회를 잘 할 수 있는 재주(?)를 터득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신을 위한 수고와 노력이 목회에 앞서서 지도자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련만 당장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나 정작 수신하는 일에 대해서는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하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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