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사랑방 손님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포기와 절망이 쉬운 이곳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냉골의 방 한 켠을 지키는 쪽방 주민들의 겨울을 취재했다.

“일할 수 있다면 일하고 싶어요”

서울역 고층 건물 사이 자리한 동자동. 좁은 골목을 걸어 들어가 만나는 낡은 건물에는 1평 남짓한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가파른 건물 계단을 올라 첫 번째 만나는 집은 이남기(62) 씨가 살고 있는 작은 보금자리다. 옷가지와 쌀 포대, 가재도구가 방의 일부를 차지하니 남은 자리는 한 사람 누울 공간뿐이다. 이 건물에는 이 씨와 같이 쪽방을 쓰는 사람 20여 명이 함께 살며 세면장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씨는 6년 전 이 곳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왔다. 광주에서 이발소를 운영해 온 그는 친구의 부탁으로 은행 보증을 섰고, 친구의 사업이 잘못 되자 전 재산을 잃고 서울로 쫓겨왔다.

당장의 생활을 위해 건축현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고층에서 떨어져 팔과 다리를 다쳤다. 수술비가 없어 어긋난 팔을 수술하지 못해 5급 장애인이 됐다.

“나이도 많고 몸이 여의치 않아 매일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기가 어렵죠. 일할 수 있으면 일하고 싶은데......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되는 돈만 가지고는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질병과 외로움은 가난한 삶에 ‘덤’

동자동에 사는 쪽방 주민들 중에는 이 씨와 같은 형편의 사람이 대다수다. 질병,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고령이어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는다. 이들이 한 달에 받는 기초수급은 45만원. 한 달 월세를 내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생활비는 턱없이 적다.

쪽방 주민들의 마을공동체인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 우건일 조직이사는 “주민들 중에는 질병에 걸려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나마 정부에서 병원 의료비가 지원되는 사람은 큰 걱정 없이 치료를 받지만, 비급여자는 병에 걸리면 거의 돌아가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쪽방 주민 3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건강이 좋다’고 응답한 사람은 단 14.7% 정도였다. 우리나라 일반 국민의 51.7%가 ‘건강이 좋다’고 답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육체적 질병 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도 심각한 수준이다. 쪽방 주민 중 61.5%가 최근 1년 내 자살을 생각했고, 21.9%는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건일 이사는 “주민 중에는 혼자 좁은 방에만 들어앉아 사람들과 어떤 소통도 안하는 사람이 많다. 고립된 채 고독과 우울증을 안고 죽어간 사람들은 시신이 되고 2~3일 후에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희망이 없고 미래가 없는 이들은 ‘이렇게 살다 죽지’하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고 전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삶을 향한 노력들 일어나

동자동 주민들의 대다수는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쉬운 이 곳. 하지만 이 곳에서도 삶을 향한 의지와 노력들이 시작되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해부터 서로 돕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1천여 명의 주민 중 약 3백여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한 달 5천 원, 1만 원을 정기적으로 내면서 현재 약 4천만 원의 자금을 만들었다.

조합원이 되면 갑자기 질병에 걸리거나 꼭 필요한 일이 있을 때 50만원 한도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시간을 두고 대출금을 갚아나간다.

조합의 이태헌 이사장은 “도움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협력해서 살아가는 길을 모색했다”며 “조합원들이 성실하게 규칙을 지키기 위해 힘쓰고 있어 조합 운영도 잘 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이에서 더 나아가 주민들의 자활을 도울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겨울, 조합은 한국교회봉사단과 협력해 ‘풀빵 리어카 사업’을 펼쳐 몇몇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10년 넘게 동자동 쪽방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강 씨(59)는 한 달 전 풀빵 리어카를 지원받아 장사를 시작했다. 지난 해 무릎을 다쳐 하던 일을 못하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장사를 시작하고 밀린 방세와 막막했던 생활고를 다소 해결할 수 있게 됐다.

강 씨는 “사람들이 와서 ‘강 씨 대단하다. 추운데서 이런 일을 할 생각을 다했다’며 얘기한다. 다른 사람들은 춥다, 일자리 없다 핑계대는데, 나는 이 일이라도 시작하게 돼 방세도 내고 열심히 살 의지가 생겨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가장 큰 힘은 주위의 진심어린 따뜻한 ‘관심’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외로움과 고독으로 힘겨워하는 쪽방 이웃들은 서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친손자와 외손자 등 3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유성옥 할머니(73)는 단칸방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40년 가까이 쪽방촌 생활을 지속해오고 있다.

몇 달 전 고관절 수술을 받아 불편한 몸이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성옥 할머니는 이웃집 쪽방 부부의 어린 아이를 돌봐주고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독거 노인들을 돕는다. 이미 동자동에서는 인정이 많은 할머니로 정평이 나있다.

또 동자동 쪽방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열악한 세입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동자동 사랑방’ 역시 주민들이 힘을 모으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 보듬어가는 자체적인 기구로 자리를 잡았다.

아울러 이웃의 관심이 절실한 이곳 주민들을 위해 한국교회봉사단은 성탄절을 맞아 주민들과 개 교회 청년들의 일대일 결연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한국교회봉사단은 24일부터 1박 2일간 주민 40여 명을 대상으로 수안보 온천 휴양을 지원하면서, 청년들이 하루 동안 빈 쪽방을 체험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방 주인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기회를 제공한 것.

이번 쪽방체험에 참여한 윤주열(24, 신촌교회) 씨는 “성탄절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지원했다”며 “어머니가 늘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사회 속의 작은 자들을 섬기고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이번 기회를 만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윤 씨는 “사실 많은 청년들이 이런 곳이 있는 줄도 잘 모를 뿐 아니라,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패배자로 단정짓는 성급한 판단을 쉽게 해버리는 것 같다”며 “교회와 청년들이 이들 삶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조금 더 이들을 위해 말하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편견과 비판보다 이해와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행사성의 일회적 지원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의 지속적이고 진실한 사랑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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