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21)

더위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더위와 싸워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 낮의 더위는 그러려니 하지만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도 식을 줄 모르는 더위는 잠마저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휴가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아마 다 같은 마음이리라. 해서 이 주간을 전후해서 많은 이들이 휴가를 떠난다.

그러한 의미에서 휴가라는 말 대신 피서(避暑)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비록 짧기는 해도 그야말로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떠나는 휴가인 셈이다.

하지만 피서를 위한 휴가만을 생각한다면 나서는 길이 더 힘들고, 그 과정은 지칠 만큼 덥고 늘어난 차량으로 인해서 더 피곤한 현실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휴가행렬은 이어지고 동으로, 서로 그리고 아예 해외로 떠나는 이들도 많다.

경비나 시간을 생각하면 차라리 시원한 에어컨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움직이지 않으니 더위와 싸울 일 없고, 주차장이 되어있는 도로에서 씩씩거릴 일도 없으니 편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매우 경제적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보따리를 꾸려 집을 나선다. 그렇게 보면 휴가가 단지 피서의 의미만은 아닌 것 같다. 피서를 위한 고생을 합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경제적인 발전과 함께 시대적 흐름이 더워도 어딘가로 나가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분위기에 의해서든 휴가라는 명분으로 고생을 하더라도 일단 다녀와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휴가의 의미를 각자가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과 환경이 다른 만큼 자신에게 있어서 휴가는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형편에 맞게 적절한 일정과 계획을 가지고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의식이 필요하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과연 휴가는 어떤 의미인지, 나아가 휴가를 어떻게 계획해야 할는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아직 ‘휴가’와 ‘논다’는 개념이 일치된 것 같은 느낌이 크다. 만일 ‘휴가’와 ‘논다’는 등식으로 이해한다면 휴가는 일하지 않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된다.

단지 휴가가 노는 것이라면 놀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때 노는 것은 주로 먹는 것으로 이어진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역시 사람마다 달라지겠지만 삼겹살에 음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영어권에서 휴가를 나타내는 말은 일반적으로 vacation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과 같은 의미로 미국 쪽에서는 holiday라고 한다. 그런데 또 다른 말 하나가 있다. retreat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직역하면 후퇴, 은퇴, 퇴각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휴가라는 말을 대신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휴가는 단지 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휴가는 일과 삶의 현장에서 잠시 물러서서 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해서 단지 놀고, 먹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일과 현장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크리스천들에게는 retreat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휴가의 개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귀하다.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으로서 휴가를 계획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 기간을 통해서 회복과 힐링이라는 필요를 채울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귀한 일이다.

특별히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해서,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지난 것들에 대해서, 혹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상실했던 자아의 모습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휴가의 의미가 아닐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휴가는 단지 일하지 않는 것, 혹은 노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휴가까지도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허락받은 은혜인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분주한 삶 속에서 그 은혜를 잊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분주하다는 것을 이유로 해서 자신의 본분과 도리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가운데 회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로 만든다면 더 좋을 것이다. 특별히 가족들과 함께 평소에 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채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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