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긴급포럼.. 김형원원장, 김동춘ㆍ박득훈 연구위원 발제

‘하나님나라의 구현과 한국 기독교의 재구성 추구’를 기치로 내걸고 지난 2010년 2월 개원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지난 25일(금) 긴급포럼 ‘세월호 참사와 문창극 사태로 비추어 본 한국 교회와 신학’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세월호 사건과 진행, 그리고 문창극 전 후보와 관련한 교계의 반응에 대해 김형원 원장의 기조발제를 비롯해서 6명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들의,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련한 발제들로 진행됐다.

문창극 발언 당시, 특히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회장 김영한)의 성명서 발표가 있은 직후에 이러한 전문적인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뒤늦게라도 이러한 발표를 통해서 반론에 나선 것을 환영해 본지는 요약정리 형식으로 기사화한다.

기조발제를 포함한 총 7건의 발제는 크게 ‘문창극 발언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주제가 된 것과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이러한 분류에 따라 문창극 관련 2회, 세월호 관련 1회 총 3회에 거쳐서 발제문 요약정리 기사를 게재한다.

이번은 끝으로 ‘문창극 발언에 대한 직접적 언급’보다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 한국교회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에 관해 언급된 기독교윤리적 관점에서의 발제 두 편과 기조 발제에 관해서다.

▲ 앞줄 왼쪽 끝이 김동춘 연구위원, 우측 끝이 박득훈 연구위원, 뒷줄 왼쪽 끝이 김형원 원장이다.

왜 개신교 신앙언어는 공공성과 충돌하는가? - 김동춘 연구위원

김동춘 연구위원은 한국교회는 자신의 확고한 신앙의 신념과 언어표현이 사회 일반에서 적합성과 타당성을 지니는지, 그리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 오늘의 한국교회는 더 이상 사회 내의 소수종파가 아니라 주류집단이 되었고, 여론주도층으로 형성했다. 자기 방어적이며, 소종파적 존재/행위방식에 머물지 말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2. 한국개신교의 공공성과의 충돌은 전환기 한국교회에게 요청되는 종교의 합리성과 타당성 결여에 기인한다. 사회의 변동기에 직면한 개신교가 주술신앙적 형태로부터 합리적인 설득에 기초한 신앙으로 전환되지 않을 때 충돌이 일어난다.

3. 오늘의 사회는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도 차단막이 없으므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상호 교차하고 있고, 상호 교환적이 되고 있다. 더구나 현대 사회의 특성상 SNS를 통한 매체적인 언어전달의 신속성과 광범위함이 존재하고 있어 사적 언어를 공적 담론으로 종교적 신앙언어를 세속광장으로 신속하게 옮겨오게 한다.

4. 문창극의 발언은 사적 신앙언어라는 이름으로 던져진 공적언어다. 그의 발언은 단지 사사로운 신앙간증이 아니었다. 결코 개인적인 신앙경험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의 강연은 도리어 그가 평소에 지니고 있던 일제 식민역사를 찬양하면서 결국은 반공주의 기독교로 연결지을 수 있는 이념적인 편향성을 공교회라는 공간에서 신앙언어로 표출한 것이었다.

5. 우리의 교회의 신앙언어들이 공공성과 보편 타당성으로부터 고립되어 동시대의 사고방식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인 것과 비기독교적인 것,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교회와 사회사이의 공동의 기반들 즉 공유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6. 이제 개신교 신앙언어는 공공성의 맥락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 교회 안과 교회 밖, 종교적 언어와 세속적 언어 사이의 공동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7. 일반은총에 근거한 공공성: 일반은총은 본래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공통적인’ 은총이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신자와 불신자, 교회와 세상이 공유하는 은총이며, 두 영역에서 발견되는 은총이다.

8. 한국개신교의 공공성과의 충돌은 한국 교회에게 요청되는 종교의 합리성과 타당성 결여에 기인한다. 사회의 변동기에 직면한 개신교가 주술신앙적 형태로부터 합리적인 설득에 기초한 신앙으로 전환되지 않을 때 충돌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뜻’ 발언이 격론이 벌어진 것은 발생된 사건에 대한 인과론적 해석이 아닌 극단적인 섭리론적 해석에 기인한다.
 
9. 그동안 한국 교회는 주술종교적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근대화로 이동하는 사회적 변동기에 불안정한 삶에 안정과 내면적 질서를 부여하는 삶의 원리와 정신적 의지처가 됐다. 그러나 일정한 경제성장을 달성한 한국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주술신앙적 기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10. 이제 주술신앙의 효능은 끝났으며, 이성신앙과 도덕신앙이 요청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몽적 신앙과 초월적 신앙은 양자택일의 성격은 아니다.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면서도 기독교신앙의 초월성을 붙들 수 있으며, 반이성적이지는 않으면서도 이성적 합리를 존중하고, 이성 너머의 신앙의 영역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복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11. 한국개신교는 점차 의례적 예배, 주술적, 무당행위로서의 비합리적 축복종교의 기능은 희박해지면서 사회의 공동선과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종교로 자리매김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신교의 믿음의 체계와 논리는 그 자신의 본래적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속에 소통하는 신앙 메시지를 제시하면서 기독교 교회와 발전에 부응해야 한다.

세월호 이후의 한국기독교: 자본주의 극복이 대안이다 - 박득훈 초빙연구위원
 
초빙연구위원인 박득훈 목사는 하나님께서 부디 한국 교회의 눈을 활짝 열어주셔서 세월호 참사와 문창극 사태를 일으킨 주범은 바로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며 한국교회가 자본주의를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1. 세월호 이후 새로운 한국사회와 한국기독교를 세워가려면 무엇보다도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세월호 참사와 문창극 사태의 궁극적 원인도 자본주의에 있다. 특히 한국기독교는 자본주의에 너무나 친화적으로 동화돼 있다.
 
2. 한국개신교가 오늘의 비극적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자본주의와의 혈맹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너무나 시급하다. 굳이 혈맹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해방직후 분단과 6.25전쟁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자본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3. 첫째,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유가 필요하다. 한국 그리스도인은 공산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받고 그들과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억울함, 피해의식, 증오, 미움 그리고 분노를 들고 치유자이신 주님께 겸손히 나아가야 한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트라우마가 먼저 치유되어야 한다. 그럴 때 자본주의와 결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5. 둘째, 자본주의가 기독교신앙을 뒤틀고 교회를 타락시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 교회 대부분은 다양한 버전의 기복신앙, 값싼 은혜, 죽은 믿음이 한국 교회를 근원적으로 망가뜨려온 주범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 배후에 자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6. 자본주의 정신의 핵심에는 맘몬숭배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총체적 부의 창출이 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이다. 따라서 부를 내려주는 신, 즉 맘몬을 숭배한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을 전폭적으로 그리고 순수하게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6. 자본주의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계명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래서 기독교신앙을 자본주의와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소위 값싼 은혜와 죽은 믿음이 등장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실천에 자신을 던지지 않아도 주님의 은혜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신앙이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기독교신앙을 뒤트는 자본주의와 결별해야 한다.
 
7. 기독교신앙을 뒤틀고, 교회를 타락시키는 자본주의의 이면에는 악마적 존재, 즉 맘몬이 버티고 서 있다. 예수님은 그 정체를 탐욕, 야만, 거짓이라고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폭로했다(요 8:44).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을 맞추는 하나님나라를 열망하는 교회가 자본주의와의 혈맹관계를 청산하는데 헌신해야 할 가장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8. 셋째, 자본주의의 극복이 가능함을 믿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겐 자본주의의 거대한 세력 앞에서 절망할 권리가 없다.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고집해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와 맺어왔던 혈맹관계를 과감히 청산하고, 하나님나라의 현실적 근사치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범하게 그 발을 내 딛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문제에 대한 복음주의의 실패, 이제는 넘어서자 - 김형원 원장 (기조발제)

포럼 첫 시간 주제발제에 나선 김형원 원장은 한국교회가 이제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버리고 성경적 사회윤리에 기초한 행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쓴 소리했다.

1. 한국 보수교회들이 사회정치참여를 기피했던 성경적, 시학적 근거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2. 첫째, 롬 13장을 기초로 하는 ‘정교분리’ 신학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보수교회는 이 가르침을 절대적인 것으로 해석해서 국가 통치세력들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3. 둘째,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날카롭게 분리해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성속이원론’이다.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전도를 더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4. 셋째, 사람과 사회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정치나 사회참여가 아니라 복음으로 개인을 변화시키는 것을 통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거론할 것도 없이 개인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변화로 연결된다는 근거 없는 순진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의 삶이 개인적인 영역과 사회구조적인 영역이 모두 섞여 있기에 변화도 두 영역 모두에서 시도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6. 이와 같은 신학적인 인식의 결핍 문제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 보수교회 지도자들이 말로는 이원론적인 입장을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와 정치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60~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비록 신학적으로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면서 마치 정치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독재 정권에 협력하고 지지하고 동조하는 정치적 행위를 지속적으로 보여줬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신헌법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표명과 국가조찬기도회였다.
 
7. 1980년대까지 명목적으로 정교분리를 내세웠던 보수교회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8. 1989년 KNCC에 대항하는 보수 교단의 연합체로 결성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발족이었다. KNCC보다 더 많은 교단과 교회들을 규합한 한기총은 대형교회 목사들의 야망적인 주도 하에 정치적으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9. 그 결과 21세기에 들어 기독교 보수세력은 한국사회 보수세력의 가장 충실한 지원세력이 됐다. 어느새 과거에 금과옥조처럼 받들던 정교분리와 성속이원론 신학을 버린 것이다. 그 대신 진보교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10. 보수교회가 적극적인 사회참여에 나설 때, 성경적-신학적 사회윤리 외에 근거로 삼는 행동원리나 가치관은 무엇인가? 이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핵심가치는 성경적이거나 신학적인 것이 아니다. 오직 현실적인 이유뿐이다. 그것은 크게 반공주의와 경제주의다.
 
11. 보수세력과 정치적으로 결탁한 가장 참담한 결과는 교회, 목사, 신학자라고 이름 하면서도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가치들을 내팽개친 행태를 보이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성경적인 사회윤리와 사회와 정치 참여의 기준을 놓쳐버린 것이다.
 
12. 신학적 기초가 결여된 사회참여로 오류를 낳았다. 무조건 수구세력을 지지하다보니 그들의 잘못된 행태까지도 관용하고, 그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은 무조건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점차 신임을 잃고 있다. 보수정권의 부패와 불의와 무능력도 용인하고, 국민들의 정의 관념에는 무감각하면서 하나님나라의 사회적 가치들을 무시하는 ‘반기독교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13. 성경적 가치보다 현실적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반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온 몸으로 전해준 결과 정의와 공평의 감각이 뛰어난 젊은 세대들은 점차 교회를 떠나고 있다. 불신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도 던져주고 있다. 기독교는 비인간적이고, 부정의하고, 불의와 타협하고, 호전적이고, 약자보다 강자편이고, 인간보다 돈을 중시하고, 섬기는 것보다 권력을 좋아하고, 희생하기보다 이용하려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비기독교인들 사이에 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14. 이제 우리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버리고 성경적 사회윤리에 기초한 행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설령 그렇게 해서 교회가 손해를 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결국 승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15. 지금 한국 교회는 가진 힘을 이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약자와 고통 받는 자들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뼈를 깎는 자기 절제와 섬김의 삶이 지속될 때, 이 땅의 기독교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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