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20)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라고 한다. 이러한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일반적으로 종교란 인간이 신을 찾아 그에게 다가가려는 열망과 행위를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종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한 인간의 종교적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과정과 결과도 전적으로 인간의 종교적 노력이며 그 노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종교적 행위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것으로, 필요에 따라서 비례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하는 신앙의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과정도 하나님에 의해서 인도되며 물론 그 결과까지도 하나님께 귀결되기 된다.

따라서 기독교에 있어서 신앙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은혜)에 대한 응답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즉 단순히 인간의 종교적 노력으로서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부르시고 인도하심에 대한 응답이라는 의미이다.

이때 응답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인간이 자각의식을 가지고 동반하게 되는 것이며, 이마저도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 대한 배려로서 응답할 수 있도록 하시는 은혜의 결과이다. 즉 기독교신앙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말이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는 자신의 신앙적 성취를 자랑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거나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동반되어야 하는 덕은 겸손이다. 자신의 신앙적 성취가 전적으로 은혜임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그 결과까지도 하나님의 전적인 배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철저하게 겸손함으로 자신의 신앙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신앙의 체계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서부터 기인한다. 즉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영원히 가지고 있는 목적을 따라서 섭리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다.

그 과정에 인간과 구원의 문제도 포함되어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뜻과 창조목적을 전제로 하나님 자신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셔서 그 목적의 주인공이 되게 하시기를 작정하심으로 인간의 구원도 그 출발점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을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없이는 인간 스스로의 종교적인 노력으로 그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의미다.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뜻)가 전제되고, 그것을 이루는 섭리가 있어야만 인간이 구원의 길에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이는 신앙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구원이라고 하는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즉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원리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믿음은 인간의 몫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믿음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복음을 믿는 기독교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은혜인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은혜를 이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기독교 신앙을 이해할 수 없다.

전적인 은혜로서 기독교와 그 신앙을 이해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사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누리게 된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을 수 없고 소홀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그분과 동행하기를 기뻐하게 된다. 한 순간도 스스로를 높이려는 어리석음으로 살지 않게 된다.

또한 은혜를 아는 한,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어리석음은 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은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한데 한국교회의 모습은 그 은혜를 깨닫지 못했거나, 저버린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신앙까지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음에 은혜를 욕되게 하고 있는 것 같기만 하니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신앙을 단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복음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으로 오히려 기독교를 왜곡시키거나 변질시키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이기적인 모습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창조목적)을 이루는 것이며, 그것을 오직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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