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인생] 탈북방송인 김아라의 좌충우돌 정착기

탈북 방송인 김아라는 2008년 18세 나이로 남한에 왔다. 한동안 무시당하는 것이 싫어서 북한 사람인 것을 숨기고 조선족인 것처럼 살기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의 삶도 달라졌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매주 출연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그를 <플러스인생 6월호>(신앙계)가 만났다.



11세 때 혼자 산에서 초막을 지어 살기도

탈북 방송인 김아라는 종합편성채널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하면서 뛰어난 외모와 풋풋한 매력으로 시청자르 사로잡았다. ’김아라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 외에도 KTV 리포터, 유코리아뉴스 홍보대사, 모델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저와 같이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친구들이 출연해서 북한의 생활상들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자리입니다. 감사한 것은 저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남북한의 차이점을 아시고 이해해주는 폭이 넓어졌고 북한에 대해 안 좋았던 인식들이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이고 탄광 광부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북한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심지어 혼자 산에서 초막을 직접 지어 살기도 했다. 그녀 나이 11-12세 정도 때다.

“중국에 간 어머니는 감감무소식이고 그 사이 아버지는 두 번 새어머니를 맞으셨어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셨고 저는 새어머니에게서 쫓겨나 여기저기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다 아버지와 함께 가꿨던 옥수수 밭에 초막을 지어놓고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그러다 친구에 의해서 발견돼 아버지 친구 댁에서 살게 됐지요.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신 것은 굶어 돌아가신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중국 길림 쪽에 자리 잡은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고 중국에 가게 된 거에요.”

목사님, 사모님을 보며 하나님 만나고 싶어져

중국에서 6년을 산 그녀는 이번에도 체포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살길을 찾아 먼저 한국에 들어간 어머니를 따라서 2008년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으로 간 어머니와 연락이 끊긴 상태였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밤마다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잤는데 정말 며칠 지나지 않아 연락이 온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하나님을 믿게 됐다고 하셨어요.”

그녀가 한국에서 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은 대안학교에서 만난 동창의 소개(?) 때문이다. 교회에서 생활비를 준다기에 그것을 바라고 교회(물댄동산교회, 조요셉 목사)에 출석한 것이다.

“교회에 가니까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저를 안아주고 제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한 주간을 어떻게 살았는지 관심을 가져주는 거예요. 처음에는 ‘왜 그러지, 나한테 바라는 게 있나’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한결 같음에 모든 게 진심임을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탈북한 분들로부터 수많은 배신을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안타까워하며 보듬어주시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졌고, 제자훈련까지 받으면서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됐습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대화하고 어울리는 것부터 통일 연습

그녀가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어머니가 사기를 당한 때였다. 대학교 1학년 다닐 때였다. 하지만 그녀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겨냈다.

“아르바이트해서 자취방 월세 내고 나면 밥 먹을 돈도 없었어요. 북한에서도 굶었는데 남한에서도 굶은 거예요. 다행히 식당에서 일하게 돼 먹는 것은 해결됐어요.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우리 가정과 저를 단련시키시는 주님은 기다리다보면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임을 믿어요.”

 그녀는 통일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있다. 통일을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통일은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먼저 실천할 수 있어요.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대화하고 어울리는 것부터 통일 연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탈북한 사람들의 아픔과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해요. 함께 친구가 되면 통일의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에게는 간절한 소망이자 절실한 기도 제목이 있다. 북한에 있는 여동생과 함께 가족 모두가 사는 것이다.

“여섯 살 때 헤어진 여동생을 어머니가 몇 해 전에 겨우 통화했어요. 최근에는 북한의 감시와 통제가 심해져 여낡이 끊긴 상태인데 동생도 무사히 남한으로 와서 함께 살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어머니와 제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기사 전문은 <플러스인생 6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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