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17)

가장 아프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챙기는 것이다.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만큼 아픈 일이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도 그러한 사람들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 기회를 엿본다기보다는 그러한 기회를 만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상상도 못하는 일들을 그런 사람들은 기가 막히다고 할 만큼 절묘하게 타이밍을 잘 이용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이 힘들고 아파하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은 사는 것인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생업을 포기한 채 희생자들의 소식을 기다리면서 체육관에서 기거하고 있다.

그곳은 개방된 공간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곳이 아니다. 난민들이 수용된 곳과 같이 체육관 바닥에 깔개를 대충 깔고 새우잠으로 잠깐씩 쉬면서 희생자들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먹는 것이 먹는 것 아니고, 쉬는 것이 쉬는 것 아닌 그런 상태에서 오직 희생자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유족대표를 자처하면서 등장한 정치인이 있다고 한다.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그가 누군지 확인하거나 알아보려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자진해서 유족행세를 했고, 어떤 경유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유족대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한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관직생활을 남기기 위해서인지 그 의도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 되었다. 사진을 찍은 것이 문제가 되면서 그가 누군지 몰랐던 유족과 시민들은 그러한 행태에 대해서 분노했다.

이 보다 더 아픈 것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무엇이즌지 묻고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절박함을 이용해서 유가족들을 상대로 갈취나 사기를 치는 일들도 있다는 소식이다.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상태에 있는 유족들에게 접근해서 뒷돈을 요구하면서 구해주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유족이 아님에도 유족행세를 하면서 지급되는 구호물품을 챙긴 사람도 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너무나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기에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천연덕스러웠기에 사람들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있고 공개된 장소인데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유족들이 임시로 기거하고 있는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다. 온 국민이 비통함을 금하지 못한 채 아파하고 지금도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자신의 목적(이익)을 위해서 아픔의 현장에서 유족을 대상으로, 혹은 관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농간을 부리며,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로 보도되고 있으니 아픔이 더해진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보여준 행동들이 더 아프고 분노하게 한다. 어떻게 그러한 발상을 했는지조차 믿겨지지 않는다. 하기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거짓말 인터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렇게 천연덕스럽고, 너무나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지. 곱게 생긴 처자가 맨 정신으로 TV 카메라 앞에서 진짜처럼 자연스럽게 거짓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녀의 인터뷰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그녀의 말을 사실로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거짓이라고 밝혀졌을 때 다시 느끼게 되는 허탈감은 치유되기 힘들만큼 버거운 것이었다.

그녀는 왜 그러한 행동을 했을까? 한편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를 인터뷰한 방송사는 무엇인가? 언론사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 축소해서 전달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말이지만 사실을 전하되 공공의 유익을 전제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사들의 행태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문제 제기를 하는 것 같다. 경쟁적으로 보도감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거짓 인터뷰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까지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각각 다를 수 있지만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기회주의적인 언행이 가져다주는 아픔을 확인하게 하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의 내면의 모습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지 묻게 된다. 그들 또한 모두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고, 평소에 평범하게만 보였던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들이 보여준 사실이기에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으니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악한 본성을 숨겨둔 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 보는 것 같아 두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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