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인생] 나눔과 봉사의 아이콘 이광기가 전하는 힐링스토리

“좋은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일은 가까운데서 찾아야 해요. 때로는 위로의 말 한마디보다 토닥여주고 기도해주고 안아주는 게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고 나눔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쉽지요?(웃음)”



어느 샌가 배우 이광기는 우리에게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나눔과 봉사의 아이콘으로 기억된다.

갑작스럽게 아들 석규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사람들은 배우 이광기의 웃음을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던 슬픔 속에서 그가 희망을 발견한 곳은 아이티였다.

아이티 지진 발생 후 석규의 사방보험금 전액을 아이티 긴급구호후원금으로 기부한 그는 현지에 날아가 폐허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을 품었다. 그 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매년 가족과 아이티를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자선 경매를 통해 마련된 수익금으로 학교를 지었다.

그에게 나눔은 곧 치유였고 삶 자체가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그의 힐링스토리를 <플러스인생 5월호>(신앙계)가 만났다.

삶의 전환점 된 아이티 봉사활동

1985년 데뷔해서 연기생활 30년째를 맞고 있는 배우 이광기(45). 그는 요즘 사극 ‘정도전’에 출연 중이다. KBS사극으로는 ‘태조 왕건’ 이후 14년 만에 출연이다. 그가 맡은 역은 하륜이다.

“다들 이광기가 연기하는 하륜에 기대를 많이 가져주셔서 어떻게 표현해내야 하나 연구하고 또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기는 어려움이 있으나 고뇌한 만큼 보람이 있습니다.” 

2009년 11월 신종플루로 아들 석규를 떠나보내고 힘들어했던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된 것은 2010년 1월에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이었다.

“석규를 떠나보내고 무척 힘든 시간이었는데 텔레비전만 켜면 아이티가 나왔어요. 전 세계에 이런 대지진이 처음이었던 터라 받아들이는 체감도가 엄청났지요. 그 무섭고도 슬픈 현실이 보고 싶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자꾸 시선이 갔어요. 마치 하나님이 이러시는 것 같았어요. ‘세상에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봐봐.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어.’”

▲ 2010년 가족과 함께 한 봉사활동

그때 석규 앞으로 들어놨던 보험금이 나왔고 어떻게 사용할까 생각하다 아내에게 아이티에 기부하자고 했지요. 그리고 2월에 아이티에 갔다.

“그렇게 아이티에 갔어요. 가지고 간 옷과 선물들을 다 나눠주고 모두들 즐거워하는데 유독 한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겁니다. 저는 울지 말라며 가볍게 그 아이를 안아줬는데 아이가 저를 꽉 껴안는 거예요.”

그때 그는 심장이 막 뛰면서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있었구나.... 이 아이를 만나려고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 그는 매년 아이티를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해 아이티에 가고 있다.

석규가 간지 3년 만에 온 선물 준서

석규가 간지 3년 만에 선물처럼 준서가 왔다. 준서가 태어나기까지 쉽지 않았다. 아이를 다시 가지려고 노력했다. 병원에서는 두 사람이 나이가 있다는 이유로 인공수정을 권했다.

“자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이건 아니다 싶어 하나님이 주시면 주시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필리핀의 아이따족을 찾아가 봉사하고 카파스병원을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수술실로 보이는 한 방에 들어섰는데 잠시 돌아보는 사이 산모가 들어왔다. 그곳은 분만실이었던 것이다.

“저와 아내는 그 분만실에서 세 명의 남자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목격했고 마지막에 태어난 아이에게는 산모의 요청에 의해 ‘아브라함’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게 됐어요. 그날 그 산모들과 아이들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시장에가 베넷저고리, 싸개 등 한보따리를 사서 선물로 드렸습니다.”

두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것이 하나님의 사인임을 알게 됐다. ‘민들레 바람되어’라는 연극과 연달아 ‘가시고기’라는 연극을 하게 됐다. ‘가시고기’ 연극을 하겠다고 결정했을 즈음, 아내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임신 3개월쯤 전치태반(태반이 자궁 출구에 매우 근접해 있거나 덮고 있을 때)으로 자칫 유산될 수 있는 위기를 맞기도 했어요. 그때는 의사선생님도 포기했는데 하나님이 아이를 지켜주셨어요. 출산 때도 준서를 낳으면서 아내가 죽을 고비를 넘겼고요, 피를 하도 많이 흘려 수혈만 42팩을 했습니다.”

“좋은 일 하는 거 어렵지 않아요”

그는 준서의 특별했던 돌잔치를 잊을 수 없다. 돌잡이를 하는데 준서가 들어 올린 물건이 십자가였던 것이다. 요즘 준서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어린이 성경책을 보는 일이다. 그는 이 아이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얼마나 클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준서가 2012년 1월 12일에 태어났어요. 아이티에 지진이 났던 날도 2010년 1월 12일이었지요. 제가 석규를 떠나보내고 아이티에서 그곳의 아이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됐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늦둥이 준서를 주신 것 같아요.”

아이티에 다녀온 이후 지금까지 자선미술작품 경매를 통한 기부활동을 비롯해서 국내외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 오고 있는 그는 나눔과 봉사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일은 어렵지 않아요. 정말 좋은 일은 가까운 데서 찾아야 해요. 때로는 위로의 말 한마디보다 토닥여주고 기도해주고 안아주는 게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고 나눔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쉽지요?(웃음)”

(인터뷰 기사 전문은 <플러스인생 5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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