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14)

지난 한 주간 내내 신조어 하나가 나라를 들끓게 했다. ‘황제노역’(皇帝勞役)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거나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물론 법조계에서도 사용하는 공적인 단어가 아니다. 그런데도 ‘황제노역’이라는 말이 한 주간 내내 장안을 들끓게 한 것은 왜일까?

이 말은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겠다는 한 지방의 돈 많은 지역 유지에 대해서 재판부가 납부하지 않은 벌금 대신에 그것에 상응하는 노역을 하라는 판결 때문에 만들어진 말로서, 벌금 총액 250여억 원을 노역기간인 50일로 나누니 일당 5억 원에 해당한다고 해서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노역’ 판결을 받을 때 통상 적용되는 일당이 5만 원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일당을 5만 원으로 계산할 경우 그의 250억 원의 벌금을 대신할 노역 기간은 50,000일 즉 140년이다. 이것은 인생을 두 번 사는 동안 교도소에서 노역만 해야 하는 기간에 해당된다.

한데 140년이라는 세월 동안 노역을 해야 할 것을 단 50일에 처해졌으니 일당 5억 원이 된 셈이다. 해서 붙여진 말인즉 ‘항제노역’인 것이다. 일당을 5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최고의 인기가 있는 해외 스포츠 선수들도 그 정도의 일당을 받는 사람은 없으니 황제나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일당 5억 원씩을 탕감 받을 수 있다는 사법부의 판결은 일반 국민으로서는 납득이 어렵다. 과연 재판부의 의식은 어떤 것이기에 판결에 대한 일반상식을 넘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수긍이 안 된다. 재판은 기본적으로 상식에 기초한 것이어야 일반인들의 정서가 용납할 수 있다.

일당 5억 원으로 계산되는 노역을 어떻게 판결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인지. 일반인으로서는 좌절감이 더 할 뿐이다. 불과 몇 백만 원 때문에 노역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판결을 받은 회장님은 닷새 동안 교도소에서 노역을 했단다. 그 사이에 세상이 들끓자 재판부가 이에 대한 형 집행을 정지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리고는 그 사람의 은닉재산을 파악해서 벌금을 강제 징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또한 일반인으로서는 납득이 안 된다. 여론이 들끓지 않았다면 그냥 ‘황제노역’으로 벌금을 탕감해 주었을 것이고, 여론에 의해서 형 집행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 아닌가. 그러면 사법부의 판결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법부의 권위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지나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은 재판부의 판결에 의해서 이미 5일 간의 노역을 했으니 일당 5억 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5일 간의 노역으로 탕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자진해서 납부를 한다고 해도 받을 근거가 없어진 것이기에 수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25억을 이미 탕감 받은 셈이다.

일당 5억 원의 노역을 받을 수 있는 황제이니 25억 원 쯤이야 뭐 아이들 말로 껌값 아니겠는가? 하지만 민초들 가운데 평생 목돈으로 25억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몇 천만 원조차 목돈으로 만질 수 있는 사람이 희소할 것인데 말이다.

한데 들려오는 소식은 더 기가 차다. 여론이 ‘황제노역’이라고 들끓자 강제 징수를 위한 팀이 구성이 돼서 은닉재산을 여기저기서 찾았다고 발표를 했다. 해외에 도피시킨 재산도 찾았다고 한다.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던 동산과 감춰진 부동산도 찾았단다. 이 모든 것이 단 며칠 만에 전해진 소식이다.

그렇다면 당국이 그의 재산상황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징수하겠다는 의지만 있었다면 최종판결까지 가지 않고 얼마든지 벌금을 징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론이 나빠지자 마치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나 하듯 속전속결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재산이 있었음에도 징수하지 않고 ‘황제노역’ 판결을 받도록 유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법은 한 사회의 공의를 유지하는 최후의 장치다. 따라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공의를 생명으로, 법 앞에서 모든 국민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적용시켜야 한다. 이것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신념이고, 본분이며, 권위다. 그 직분과 권위는 국민적 합의로 그에게 위탁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권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신을 위한 권위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 권위는 오직 국민이 위탁한 것이기에 국민적 공의를 전제로 담보되는 것이어야 한다.

법의 집행을 맡은 자들은 법 위에 군립하거나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다. 그 권위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것이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한 것으로 착각한다면 ‘황제노역’과 같은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황제노역’을 판결한 법원장이 사표를 냈다는 소식이다.

사표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사법기관의 권위가 이미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민의 마음도 아프고 힘이 들기 때문이다. 법은 아픔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위로와 소망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특별히 사회적 약자인 민초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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