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13)

기독교 신앙의 최종적인 목표는 단지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있지 않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요행을 위한 종교적 행위로 충족하는 것이 더더욱 아니다.만일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목적을 위한 종교적 행위로 만족한다면 그의 신앙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필요나 욕구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에 있어서 각 피조물에 부여하신 존재목적을 깨닫고 그것을 자신 안에 이루어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다른 종교에서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데 고민이 있다. 기독교 신앙은 만물의 존재 목적을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 자체에서 찾는 것이 아니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영원한 뜻 안에서 찾는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여전히 신앙의 목적을 자신과 현실에서 찾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이 없다면 기독교도 결코 주술신앙과 기복신앙의 한계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독교는 신앙과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창조목적 안에서 찾고,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 섭리, 능력을 구하여 이루어가는 삶이어야 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이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면 ‘순종’과 ‘제사’의 관계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개인의 목적에 집착한 종교적 행위나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배제한 형식적인 종교적 행위로서 ‘제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순종’을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는 종교적, 의식적 행위로서 제사는 아무리 화려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고, 기뻐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뻐하시겠다는 ‘순종’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제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순종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그분이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창조하신 분임을 믿으며, 특별히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기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순종은 전적으로 창조자로서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목적을 기뻐함으로 그 목적을 자기 안에 이루어 가는 모습이다.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순종이며, 그 순종이 곧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단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에 국한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일에 있어서 목적을 하나님의 창조목적 안에서 찾으며 그것과 일치시키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의 목적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일치시키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 인간의 삶의 목적을 일치시키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통해서 자기 안에 형성시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담 이후에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 안에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회복을 위한 과정이 인생의 여정이고 신앙생활의 과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기 안에 채워가야 할 것은 하나님의 형상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그것은 인생의 목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왜 ‘제사’를 기뻐하지 않고 ‘순종’을 기뻐하시겠다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정작 찾아야 할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현재적 필요를 채우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신앙의 본질을 왜곡시킨다면 그것은 참된 기독교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현실은 아쉽게도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요행을 찾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창족목적에 대한 고백(깨달음)과 함께 그 목적이 자신 안에서 확인될 수 있도록 일치시키는 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고, 그분의 뜻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을 신앙인격이라는 말로 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신앙에 의해서 자신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형성하도록 하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 이 수고가 곧 신앙으로 사는 여정을 통해서 자기 안에 만들어가야 하는 신앙과 인생의 수업이다. 이 수업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깨닫는 과정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화(自己化)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 안에 담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앙은 곧 인격인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허락받은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이 아담 이후에 상실하고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 안에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아를 만드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신앙이 좋다는 말과 그 사람의 인격이 일치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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