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11)

조류 인풀루엔자(avian influenza)가 유행하면서 이 나라 곳곳에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동시에 조류독감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발생지역의 일정 범위 안에 있는 가금류(家禽類)를 모두 살처분한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하지만 TV를 통해서 전해지는 장면을 보면서도 그 참혹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내 일이 아니니 멀게만 느껴진다. 지난 달 구정 전에 발생했으니 한 달이 지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살처분된 가금류는 수백 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어도 이미 발생한 농가 주변에서 사육하는 가금류는 매뉴얼에 따라서 무조건 살처분해야 한단다. 조류독감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 때문에 발생지 주변 농가에서 사육하고 있는 가금류는 도두 살처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처분되는 가금류의 수가 너무 많아서 2차 피해가 심각하다는 뉴스도 전해진다. 살처분한 오리와 닭을 묻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심각한 피해가 동반된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닭과 오리를 한 장소에 묻으니 침출수와 함께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동반하는 것인데 당장 살처분함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보다 더 큰 문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생명들을 산채로 묻어야 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직접해야 하는 일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도 2차 피해로 나타나는 문제다. 따라서 사람들이 살처분하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거나, 그 일에 종사한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인해서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조류독감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농민들이나 지자체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그들의 정신적인 충격에 더하여 2차 피해까지 생각하면 조류독감이 주는 걱정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몇 년 전에 조류독감의 유행으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보았던 기억이 생생한데 당시보다도 더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는 소식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방역을 위해서 추운 겨울에 전국 곳곳에 방제를 위한 소독을 해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 사용되는 소독약과 장비운영비, 일력까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얼마나 컸던가. 그로 인해서 지나는 모든 차량은 소독약을 뒤집어쓰는 것을 감수해야 했던 기억이다.

그런데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 마다 방역당국조차 조류독감을 모두 철새들 탓이라고 하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는지. 조류독감을 철새들이 옮기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류독감 발생지역에서 폐사한 철새들의 사체를 수거해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는지를 검사하니 조류독감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이는 조류독감의 모든 책임을 결국 철새에게 지우고야 마는 것 아닌가.

어떤 의미에서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철새들은 가금류들이 집단적으로 폐사하는 것처럼 죽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그러한 예가 없거나 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반면에 가금류는 조류독감에 걸리면 그 농장에서 몇 마리를 사육하든지 한 순간에 모두 폐사한다. 왜 일까? 왜 철새들은 비록 감염되었다고 할지라도 집단폐사하지 않는데 가축들은 몰살을 당하듯 일시에 폐사하는 것일까?

감기가 그렇듯 사람도 감기에 걸려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새들에게도 그런 감기인 것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면역성이 약한 사람에게 발병되는 것과 같다. 즉 조류독감에 가금류들이 약한 것은 면역력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바이러스가 유행하지만 면역성이 강한 개체는 감염되더라도 발병하지 않지만 약한 개체는 치명적이게 되는 것이다. 가금류가 엄청난 피해를 당하게 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즉 가축들의 면역력이 약하게 된 것은 인간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가축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최소화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에만 신경을 쓴 결과다. 특별히 가금류는 최소한의 공간조차 허락받지 못한 상태에서 생산을 위한 희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인간이건만 정작 조류독감이 유행하니 그 책임이 모두 철새에게 있다고 전가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지만 피조물 가운데 가장 비굴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이 낳은 비극이며 피해인 것을 애써 부정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 아니겠는가?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욕심 때문에 항생제로 키우고 있는 가금류가 조류독감에 약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책임을 철새에게 돌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인간의 무책임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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