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규 박사 '미래 칼럼' (1)

현재 한국교회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주요 이단들은 요한계시록을 잘못 해석하여 정통교회의 성도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요한계시록이 실제로 이뤄질 일(‘실상’이라고 함)에 대하여 직접 들었다고 하면서 그들의 계시록 해설만이 정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단들도 성경 전반을 가르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요한계시록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이단들의 주된 교리들은 요한계시록과 연관되어 있다. 비록 그것이 정통교회의 계시록 해석과는 다른 이단 사상이지만, 계시록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정통교회의 성도들은 계시록을 앞세운 이단들의 포교대상이 될 수 있다.

성도들이 이단들의 현혹에 빠지게 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들 자신에게 잘못이 있지만, 그들에게 계시록을 가르치지 않는 목회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사실 소수의 목회자들이 요한계시록을 설교하거나 가르치고 있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목회자들은 자신부터 계시록을 상세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므로 성도들에게 상세하게 가르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의 책임을 목회자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이 계시록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신학교들이 목회자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교

수 개개인이 훌륭하지만 한 신학교 내에도 계시록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지닌 교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은 오히려 혼란스럽게 되고 자신이 어떤 입장에 서서 성도들에게 계시록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계시록을 설교한다든가 가르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교단들은 산하 신학교에 의뢰하여 계시록에 대한 교단신학적 주석 혹은 해설서를 집필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현 시점에서 필수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과업이다.

만약 같은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교단들은 각 신학교들로 하여금 연합으로 이 과업을 수행하게도 할 수 있을 것이다(특히 군소교단의 경우). 그래서 신학교들마다 공론화되고 통일된 요한계시록 주석을 집필하도록 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목회자들을 재교육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목회자들은 그러한 주석(해설서)을 가지고 성도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이단을 경계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계시록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풍성한 의미를 잘 전달해 준다면 성도들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며, 계시록을 앞세워 포교해오는 이단들의 접근에 대하여 방어능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주요 이단들은 요한계시록을 오용하여 어떤 교리들을 만들어 놓았을까? 약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단들은 그들의 교주를 이 시대에 구원의 사역을 하기 위하여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 가르치며 숭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단들은 요한계시록 서두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의 7교회와 편지 전달 사건은 과거 2,000여 년 전의 소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한국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예언이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 2,000 역사의 과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단들은 성경(특히 요한계시록)이 역사적 과정에서 성경이 성취되어 왔다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배제하려고 한다.

또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이긴 자’라는 술어를 인간 교주에게 적용시키는데, 자신 보다 앞선 인물을 배척하고 말씀으로 싸워 승리했다고 하면서 교주를 이긴 자라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단들은 요한계시록이 사도 요한을 통하여 기록되긴 했지만, 오늘날에는 ‘사도요한격인 목자’가 등장하여 계시록의 실제 성취에 대하여 알려준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성경을 잘 가르친다고 하면서도 ‘성경에도 없는 술어’를 고안해 낸 것이다.

그런가하면 그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144,000’이라고 하는 숫자를 ‘모든 시대에 구원을 받게 될 하나님의 백성의 총 숫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믿지 않고, 자신들의 집단으로 넘어간 신도들의 ‘실제 숫자’라고 가르친다. 이단들 가운데는 ‘여자, 여자가 낳은 아이, 광야’ 부분을 오용하여 또 다른 이단 교주를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이단들은 ‘시온’을 성경의 동방개념과 연관지어 ‘한국’이라고 가르쳐왔다. 그런가 하면 계시록에 등장하는 ‘흰말, 흰말을 탄자’ 등에 대하여 정통교회와 다르게 해석한다. 정통교회는 흰말을 승리(혹은 성결)를 의미하고 흰말을 타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쳐 왔으나, 이단들은 흰말을 타신 분은 그리스도이시지만 흰말 자체는 이단 교주라고 가르친다(어떤 이단은 흰말을 타신 이도 이단교주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는 ‘낙원에 있는’ 목베임을 받은자와 표받지 않은 자가 등장하는데, 정통교회가 이 부류들을 ‘낙원에’ 있는 존재들로 가르쳐 온 반면, 어떤 이단은 목베임을 받은 자들은 순교자들로서 저 하늘에 있는 이들이고, 표받지 않은 자들은 이 땅위에서 정통교회로부터 이단 집단으로 넘어간 이들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이 땅에서 이단 단체가 144,000을 다 채우고 나면 하늘에 있는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이 땅 위에 있는 이단 신도들에게로 내려와서 신인합일하여 영원히 산다고 가르치는 것이다(그러나 이미 영혼과 육체를 지니고 있는 인간 존재에게 하늘의 순교자의 의 ‘영혼’이 하나 더 임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단들의 요한계시록 해석은 이와 같이 허무맹랑하고 비기독교적이며 이단적이다. 그들은 정확한 원칙에 근거하여 요한계시록의 전체를 하나님이 계시를 통하여 알려 주신 바에 따라 잘 가르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릇된 해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정통교회와 이단집단의 요한계시록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은, 정통교회가 주 하나님을 높이는 반면 이단들은 계시록교육을 잘 가르친다고 하면서도 주 하나님이 아니라 이단 교주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단들이 요한계시록 운운하면서 신도들을 현혹하여 그릇된 성경공부로 그들을 세뇌시키고 결국에는 이단 교주를 추앙하도록 만들고 있다(갈 1:6-9절은 이단들에게‘저주’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목회자들은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위에서 논한 바 각 교단 차원에서의 계시록 주석 혹은 해설서가 나오기 전에도 계시록에 대한 개요를 성도들에게 전달해 놓아야 한다.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주님의 양들을 잘 섬기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요한계시록 교육이다. 더 이상 계시록 교육을 늦추지 말아야겠다.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을 가르치지 않는 목회자라면 이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교회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오용하고 있고, 또 계속 생겨날 이단들도 요한계시록을 오용하여 주의 성도들을 현혹할 것이 분명하므로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계시록을 가르쳐 주길 바란다. 목회자들을 잘 구비해주기 위하여 각 교단 총회들과 신학교들은 더욱 긴장하여 계시록 교육을 위한 주석 내지 해설서를 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교육을 앞당기면 앞당길수록 그러한 목회자가 시무하는 교회의 성도들의 이단들을 현혹에 빠져들 확률이 최소화될 것이고, 더욱 더 헌신적인 마음가짐으로 주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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