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5)

창세기에서 제일 먼저 대할 수 있는 단어 태초라는 말은 시작, 혹은 출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즉 창세기 첫 단어로 등장하는 태초(In the beginning))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무한의 시간인 영원의 의식적(意識的) 개념, 즉 계산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에서 시간은 영원의 현재적 이해인 것이다.

시간은 무한의 현재적 개념, 또는 의식적 개념이다. 즉 시간의 시작(즉 창조)은 영원을 인식할 수 있는 시작이다. 만일 그러한 의미에서 시간의 시작(창조)이 없었다면 현재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의 개념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의 속성은 영원을 전제한 것이기에 결코 멈추지 않으며 동시에 멈춰있는 것과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영원은 영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그 영원을 시간이라는 개념 안에서 의식할 뿐이다. 그러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다른 것은 정복할 수 있지만 시간은 결코 정복할 수 없다. 시간 또한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간이 의식하든 하지 않든 무심하게 흘러간다. 시간은 인간에게 묻지 않는다.

  아쉬운 것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이다. 때로는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돌아봐주지 않는다. 냉정한 시간은 무심히 지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 앞에 있는 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맞이하는가 싶었는데 이미 지나간 시간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음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아직 많은 시간이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자신 앞에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을 때는 아쉬움만 남겨진다.

  2013년이 다 지나고 이제 하루가 남았다. 정월을 시작할 때 365일이라는 긴 시간을 생각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연말이었는데 그 날들이 다 지나고 2014년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아직 2013년을 정리해보지도 못했는데 새해를 맞아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은 차라리 아무런 생각이 없어야 편할 것 같은 것은 왜일까?

스피드를 즐기는 놀이기구를 처음 타면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여 힘들고 벅차다. 경우에 따라서는 졸도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속도에 적응하여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사람들은 더 빠른 것을 원한다. 해서 점점 빠른 놀이기구들이 출현하고 느린 것은 외면을 당하게 된다. 그만큼 속도에 적응하는 사람은 빠른 것을 즐기게 된다. 또한 적응한 만큼 빠름을 탓하지 않는다.
 
한데 시간의 빠르기란 놀이기구의 빠르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결코 빠르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 앞을 지나쳐갔으니 말이다. 놀이기구는 언제든지 타기를 원한다면 다시 내 앞으로 와서 멈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다. 한 번 지나친 시간은 영원한 과거로 간다. 어떤 미련이나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과거로 숨어든다. 아쉬운 것은 지나간 시간을 붙들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는 인간뿐이다.

인간은 시간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캘린더를 만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다시 주어지는 것처럼, 혹은 시간이 반복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시간은 반복이 없다. 영원히 지나갈 뿐이다. 지나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인간을 위해서 속도를 조절하지도 않는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정해진 템포를 정학하게 지켜서 지날 뿐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다시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은 시간에 대해서 영원한 애증을 느끼게 되는 것 이외에는 결코 시간은 다시 돌아 와주지 않는다.

이제 2013년에 주어졌던 시간인 365일, 8760시간, 525,600분은 인간에게 있어서 소진(消盡)한 시간이다. 그 시간이 다시 우리 앞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다만 2014년이라는 미래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지만 그 역시 무심코 과거로 지나갈 시간이다. 해서 인간은 그 시간이 자신 앞에 다가올 것을 예비하여 그 속도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 속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시간을 저축하거나 머물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시간을 통해서 자신에게 충실해야 하고, 그 시간을 유효하게 만들어야 할 뿐이다. 2013년을 아쉬워만 하지 말고 다가오는 시간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시간을 붙들려고 하지 말고 다가오는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만이 돌아봄을 기뻐할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새로운 시간이 아니다. 여전히 영원일 뿐이다. 그리고 현재를 시간으로 의식할 뿐이다. 때문에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만이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송구영신의 시점에서 시간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인간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특권이기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충실할 수 있을 때 영원한 현재에서 만족하고 감사할 수 인간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아쉽지 않았던 시간이 없다. 다가오는 시간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안에서 삶을 허락받은 인간으로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현재에서의 동행을 기뻐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그분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기에 기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현재를 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새해를 맞는 마음가짐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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