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2)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황량할 만큼 쓸쓸해지기 시작한다. 쓸쓸함은 가을이 주는 특별한 느낌이기에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분위기가 가을답기에 좋다.

생명력을 잃어가는 정경이기에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쉼’이라고 하는 여유를 가지게 하는 것이니 좋다. 하니, 조금씩 쓸쓸함을 더해가는 들녘은 가을이 만들어주는 선물이 아니겠는가.

한데 요즘 가을 들녘의 낯선 풍경 때문에 당황스럽다. 쓸쓸해져야 할 들녘이건만 흰색 비닐로 포장된 둥그런 물체들이 벌판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들이 가을 들녘에 가득하다. 황량할 만큼 쓸쓸한 분위의 들녘이라야 하련만 낯설기만 한 정경에 가을마저 잃어버린 느낌이다.

그것은 추수가 끝난 후 볏짚을 기계로 둥글게 묶어 비닐로 포장해 놓은 것이다. 조그마한 논은 물론이고 평택, 만경과 김제평야 전체가 하얗다. 낯설기만 한 정경에 어리둥절하다. 이제까지 가을 들녘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가을은 가을다움에 아쉬움과 쉼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었건만 전혀 그렇지 못한 정경은 가을마저 잃게 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더하다.

한데 사람들만 낯선 것이 아닌 게다. 이맘때 들녘엔 북녘에서 내려오는 철새들이 왁자지껄해야 한다. 적어도 녀석들이 너른 들 어딘가에서 녀석들의 소리가 들려야 한다. 하지만 만경에도 김제에도 녀석들의 그림자도 뵈지 않는다. 녀석들의 겨울 거처인 금강하구에서도 그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해서인가, 가을 들녘은 생명력을 잃은 채 황량하기만 하다.

가을 들녘은 휑해도 생명을 느끼게 하는 것은 때 맞춰 날아오는 철새들 덕이다. 녀석들이 금강하구 쉼터에서 낮 시간에 충분히 쉬고 아침저녁으로 먹이를 찾아 나서면 쓸쓸하기만 하던 들녘이 깨어난다. 텅 빈 들판이 만들어주는 가을만의 정경이다. 해서 가을 들녘은 쓸쓸하지만 아름답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여유가 있어 좋다. 빈들은 넓은 품으로 철새들을 품어 겨울을 나게 할 것이다. 이 역시 빈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녀석들이 오지 않았다. 아니 녀석들이 올 수 없었던 게다. 녀석들이 이 나라가 아닌 어디 다른 곳으로 갔던지, 아니면 어딘가 녀석들이 쉴 수 있고 먹이를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게다. 과연 그런 곳이 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히 녀석들은 만경에도, 김제에도, 금강에도 오지 않았다.

추수가 끝난 후 볏짚은 그대로 논으로 돌려주어 흙에 힘을 보탰다. 겨우내 썩어서 지력(地力)이 좋아지도록 영양분을 보충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했다. 볏짚을 거둬들이지 않고 논에 흩뿌려서 겨우내 썩게 했던 것이다. 그것은 땅에 대한 배려이며 인간이 얻고자 하는 식량을 생산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볏짚에는 낙곡(落穀)이 많이 섞여있어서 겨울 철새들의 먹잇감을 공급해준다. 해서 가을이면 북녘에서 철새들이 날아와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 겨울을 난다. 하니 볏짚을 논에 그대로 두는 것만으로도 가을 정경은 아름답고, 그와 함께 철새들에겐 쉼과 먹이의 터전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한 들녘은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쓸쓸함을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겨울 나그네들이 함께 함으로 생명을 느끼게 한다. 하니 가을의 들녘이 만들어주는 정경은 가을만의 진경이다.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한데 가을 들녘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근년의 일이다. 그것도 극히 일부지방에서 있었던 일인데 금년 가을은 모든 들녘이 변했다. 볏짚을 비닐로 포장한 것들이 온 들녘을 장악하고 말았다. 북녘에서 날아오던 철새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게다. 사람의 눈에도 낯설고 적응되지 않는데 겁 많은 철새들이 어찌 적응을 하겠는가. 게다가 들판은 이제까지 경험했던 가을의 정경이 아니다. 비닐에 싸인 볏짚이 하얗게 차지하고 있는 들판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가을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볏짚이 돈이 되면서 농부들을 그것을 흙으로 돌려주지 않게 된 것이다. 볏짚 한 덩어리가 5~6만 원 이상 한다니 그냥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추수한 후 볏짚을 모두 비닐로 묶어놓은 것이다. 그것은 목장으로 팔려가 소들의 겨울 먹이가 된단다. 사료 값이 비싸지면서 사료로 기르던 소들에게 볏짚을 먹이로 주게 되었단다. 해서 비닐로 포장된 볏짚들이 가을 들녘의 정경을 바꿔놓은 것이다. 농부들은 버리던 볏짚을 팔아 돈을 받을 수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젠 가을마저 빼앗긴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러나 이제 쓸쓸한 들녘에서 느끼던 가을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는지. 없어진 가을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지금 어디선가 방황하고 있을 겨울 나그네들에게는 무엇이라 변명을 할는지. 해서인가, 올 가을은 더 쓸쓸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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