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교수 '신학 칼럼' (1)

▲ 이종전 교수
가을걷이가 시작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들녘은 썰렁해진다. 심었던 작물을 수확하면서 들녘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게 되면 비로소 들녘은 겨울잠에 든다.

하지만 그즈음 작물을 심은 논과 밭을 피해서 습기가 많은 고랑에 겨우 자리를 잡은 채 비로소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듯 꽃을 피우는 녀석이 있다. ‘고마리’이란 놈이다.

주로 시궁창이나 개울, 농수로에 주로 서식을 한다. 여름내 숨을 죽인 채로 살다가 다른 생명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그즈음 녀석들은 겨우 힘을 내서 높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급하게 꽃을 피운다.

  높이 솟은들 고랑 높이를 넘지 못하고, 꽃을 피운들 메밀꽃만이나 할까. 볼품도 없다. 존재감을 확인하려면 확대경을 가지고 유심히 살펴야 할까. 게다가 시궁창이나 고랑에 자리하고 있으니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어렵다. 장미만큼 아름답고 탐스럽기라도 해야 찾는 이들이라도 있으련만 그렇지도 못한 녀석들은 외롭기 그지없다. 더 이상 들녘을 찾는 이들도 없어지는 시기인지라 더 쓸쓸하다.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 하니, 꽃을 찾는 이들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없다. 꽃은 봄을 연상케 하고, 단풍은 가을을 연상케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 현상이다. 한데 이 가을에 그것도 늦은 가을에 꽃을 피우는 녀석은 스스로 고독하기를 자원한 셈이다. 게다가 꽃봉오리라도 잘났으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으련만 그마저 녹록치 않으니 눈길조차 주는 사람이 없다. 해서 더 외롭다.

  ‘고마리’는 그렇게 쓸쓸한 때에 꽃을 피운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니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턱없이 역부족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어김없이 이때쯤 꽃을 피운다. 그리고 누가 봐주든 봐주지 않든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자신만의 꽃을 피운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시린 서리가 내리기 까지 결코 자신의 처지를 좌절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운다.

  사람들의 관심이나 박수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변함없이 시궁창이나 고랑을 떠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묵묵히 꽃을 피운다. 때론 그러한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거나 한탄을 할 수 있으련만 시키지 않아도 그 자리를 잊지 않는다. 때를 놓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자리는 아무도 대신 차지하지 못한다. 혹여 그 자리를 넘보는 녀석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자리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가을 들녘을 걷노라면 녀석들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하기야 찾는 사람이 없는 곳이니 어디 인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나 있을까. 하니 별관심이 없이 찾는다 할지라도 녀석들의 입장에서야 반가울 수밖에 없으리라. 모처럼 찾아왔다고 반기면서 손을 흔든다. 비록 보여줄 만한 자태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찾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녀석들의 자태를 보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놀라게 된다. 결코 나댈 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다소곳한 아름다움을 가득 담고 있기 때문이다. 흰색과 붉은색, 분홍색의 조화로움이 최상이다. 작지만 모여서 메밀꽃처럼 피어있는 ‘고마리’들이 가을의 농수로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그런데 금년엔 아직도 녀석들을 만나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마 녀석들이 나마저 저들을 버렸는가, 섭섭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아직 녀석들을 찾아볼 계획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지구상 어딘가에 사람들은 무관심하지만 있어야 할 것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들처럼 꾀를 부리지 않는다.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을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더라도 저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해야 할 것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꽃까지 피워서 늦게라도 찾는 이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더한다.

  하지만 인간임에도 ‘고마리’만큼도 못한 모습으로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들풀만도 못한 것이 아닐지. 이 가을이 다가기 전에 ‘고마리’들과 이야기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 이제 머지않아 서리가 내릴 것인데 언제나 녀석을 만날 수 있을지. 오늘도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돌아보면서 고마리를 생각한다.

  비록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 맡겨진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 들녘 습지에 자리한 녀석은 텅 빈 늦가을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자신을 향해서 박수를 쳐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녀석은 외롭게 꽃을 피우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들녘에 피어있을 ‘고마리’가 나를 깨달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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