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종강요 금지 반대’, 왜 문제인가?

세계교회협의회(WCC) 한국준비위원회가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총회’를 만든다는 미명 아래 ‘초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부산 총회의 에큐메니칼 본성을 사수해야 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김영주 총무까지 사고에 일조했다. 당연히 오는 17일 NCCK 실행위원회에서 이 사고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종강요 금지’, ‘동성애 반대’ 포함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13일 명성교회당에서 열린 ‘WCC 제 10차 총회 전진대회’에 앞서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김삼환 목사, 진행위원장이자 NCCK 총무 김영주 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회 준비위원장 길자연 목사 등 네 사람이 기자회견을 갖고 “보수교단은 WCC 부산 총회를 이해하며 아울러 한기총과 NCCK는 2014년에 열릴 WEA 총회가 성공적인 총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선언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선언문은 제3항에서, “우리는 개종전도(Proselytism-‘개종 강요’가 더 정확한 표현) 금지에 반대하고”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문제는 WCC가 그동안 ‘개종강요’, 즉 개종전도에 대해 줄기차게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으며, 부산 총회에서 채택될 예정인 ‘선교선언문 초안’에도 역시 이에 대한 반대 의사가 분명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WCC 총회를 유치한 한국교회가 ‘보수와 진보의 화합과 협조’를 내세워 WCC의 선교에 대한 입장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에큐메니칼 축제’인 WCC를 준비하면서도 에큐메니즘과는 동떨어진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비난을 받아 온 한국준비위원회가, 이번에는 프레임을 박차고 나와서 아예 “우리는 에큐메니즘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선언한 형국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선언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조금 묘하다. 지난 11일, 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은 NCCK 사무실에서 김영주 총무와 만나 한 선언문에 합의하고 서명했다. 이 선언문에는 △종교다원주의 △공산주의, 인본주의 등 복음에 반하는 모든 사상 △혼합주의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두 사람이 합의한 만큼 두 사람의 서명만 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홍재철 목사는 이것으로는 안 된다며 다른 문서를 들고 와 합의를 종용했다. 이 문서가 바로 13일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문서이다. 이에 대해 김영주 총무는 합의를 해 줄 수 없다고 밝히고, ‘동성애’, ‘개종강요 금지’ 등을 빼고 문구를 순화한 문서를 만들어 에큐메니칼운동권 원로들의 자문을 구한 뒤 13일 명성교회로 가지고 갔다. 하지만 기자회견에 앞서 모인 자리에서 홍 목사 등은 끝까지 원래의 문서를 밀어부쳤고, 결국 김 총무가 여기에 서명을 해 준 것이다.

말하자면, 김영주 총무는 자신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뺀 내용이 다시 들어간 선언문에 서명을 해 준 것이다. 그리고 다시 들어간 내용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개종강요 금지 반대’였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하는 선교와는 상반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기자들이 아닌 에큐메니칼 운동권의 일부 인사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에큐메니즘, ‘개종강요’에 분명한 반대 입장

그러면 왜 에큐메니칼 운동은 ‘개종강요’에 반대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 문제이다. 이미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WCC 창립총회는 ‘종교의 자유’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의 하나’로 정의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정교회와 가톨릭 사이에 이 문제로 인한 갈등이 불거졌다. 그 이유는 정교회 지역에서 발생해 정교회의 제의를 따르고 있지만 소속은 로마교회, 그러니까 가톨릭 교회에 속해 있던 ‘구제의 가톨릭 교회’(Eastern Rite Catholic Church)의 교인들을 끌어가려는 양 교회의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종강요’의 문제는 그리스도교와 타종교 사이에서 생겨났다기보다는 그리스도교 내의 다양한 교파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치를 깨트리는 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히 개종강요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선교가 강화되고,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물질적 자산들이 대량 투하되면서, 개종강요 문제는 그리스도교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됐다. 다시 말해서 물질적 원조를 앞세워 현지의 타종교인은 물론, 이미 그리스도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특정 교회나 선교단체의 공동체로 끌어들이는 일이 빈발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칼 운동권에서는 ‘개종’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교회 역시 이 논란을 비켜 가지 못했다. 특히 지난 1990년대 초반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이 개방되면서,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현지에서 정교회 교인들에 대해 선교활동을 펼치자, 러시아 정교회가 이를 ‘개종 강요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 정교회는 NCCK와 관련을 맺지 못한 교회나 선교단체의 러시아 내 선교활동을 금지시켜 버렸다.

WCC가 개종강요 문제에 대해 가장 분명한 입장을 드러낸 것은 지난 1997년 중앙위원회가 채택한 ‘공동의 증언을 향하여: 선교에 있어 책임있는 관계를 선택하고 개종강요를 비난할 것을 요구함’(Towards Common Mission: A Call to Adopt Responsible Relationships in Mission and to Renounce Proselytism)이라는 문서였다. 이 문서는 ‘개종 강요’가 그리스도교의 ‘증언에 반하는 행위’(Counterwitness)인 동시에 ‘증언의 타락’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개종 강요는 선교에 있어서 하나의 추문(scandal)이라고 비판한다.

WCC의 선교문서들은 대부분 비슷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2011년 WCC와 교황청, 그리고 WEA가 합의해 발표한 ‘다원종교사회 속에서의 그리스도교 증언’이라는 문서는,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속임수와 강제적인 수단에 의지하는 등 선교를 수행함에 있어서 적절하지 못한 방법을 동원한다면, 그것은 복음에 위배되는 것이며, 다른 이들의 고통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문서는 이른바 ‘개종’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이 종교를 바꾼다는 것은 적절한 성찰과 준비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반드시 수반되고 개인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단계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인식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부산 총회에서 채택될 ‘선교선언문’ 역시 ‘개종강요’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종교적인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추구하는 일이 두드러지고 있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바, 이런 상황에서는 전도가 결코 개종 강요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 선언문 초안은 밝히고 있다.

WCC 총회 앞두고 한국교회 에큐메니즘에 큰 손상

이처럼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일관되게 금지해 온 ‘개종 강요’에 대해, 총회 한국준비위원회와 한국의 보수권이 함께 정면으로 반대 입장을 천명해 버린 것이 바로 13일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선언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어 가는 NCCK 총무도 서명했다.

이 선언문이 발표됨에 따라 국내 에큐메니칼 운동권은 큰 충격을 받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는 17일 열리는 NCCK 실행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로 가장 곤란한 입장에 처한 것은 바로 NCCK의 김영주 총무이다. 김 총무는 이 문제와 관련, “자리를 박차고 나오거나 끝까지 서명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결국 서명을 하고 말았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비판받을 것은 비판받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며,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가 WCC 총회를 유치한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즘에 큰 손상을 입힌 사태라는 점에서, 어떤 한 사람이나 기관의 사과나 책임으로 끝날 수준이 아니라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또 이 선언문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는 ‘NCCK를 누르고 이겼다’는 승리감이 팽배해졌다는 것도 문제다. 이미 오늘 열린 한기총 실행위원회는 ‘정복자 마인드’로 충만했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전언이다.

한편, 이번 사태로 김영주 총무와 홍재철 목사의 ‘악연’이 재연된 것에 교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NCCK가 ‘평화통일 희년운동’을 펼치고 있던 지난 1995년, 이 운동의 실무 책임자가 바로 당시 NCCK 일치협력국장이었던 김영주 목사였다. 그런데 NCCK는 이 운동에 당시 홍재철 목사가 이끌던 ‘희년성회’를 끌어들여 결국 큰 낭패를 봤다. 18년이 지난 지금, 김 총무와 홍 목사의 해묵은 ‘악연’이 다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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